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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Nov 24. 2017

어미는 참 신비롭고 위대하다

호주, 퀸즈랜드, 몬 레포스(Mon Repos)

어릴 때 보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항상 내 눈물을 쏙 빼던 건 바다거북이었다. 어린 나를 거뜬히 등에 태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그 거대한 거북은 죽을힘을 다해서 태어났던 바닷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모래를 파고 구덩이를 만들어 거기에 알을 낳았다. 모래로 알을 다시 덮은 거북이는 왔던 바다로 돌아갔다. 거기까지만 봤으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알을 낳고 혼자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쳤을 텐데…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 이후의 모습을 비췄다.

알에서 깬 아기 거북은 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가는데, 그 사이에 그 어린 거북이를 노리는 것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걸음을 뗀 지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반이 잡아 먹혔다. 그렇게 살아남아 바다에 도착하는 아이들은 불과 10%나 됐을까? 그 장면은 내 동심을 일찍 파괴했다.

호주의 브리즈번 Brisbane에서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몬 레포스 Mon Repos라는 곳이 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대 농장이 있는 분다버그 Bundaberg라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동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돌아오듯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멘 레포스에서 태어난 바다거북이들은 알을 낳으러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매년 11월이라니 좀 웃기다. 거북이들이 달력을 보고 ‘11월이 되어 가잖아? 슬슬 몬 레포스로 갈 준비를 해야겠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거북이 센터는 빛도 최소로 한 채, 주변의 다른 시설들과 꽤 떨어져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센터에서는 어미 거북이 알을 낳은 순간부터 알에서 깬 거북이가 바다로 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언제 바닷가에 오는 거야 거북이 마음이지만 하루에 이곳을 찾아오는 거북이도 그리 많지 않다. 미리 예약해야만 올 수 있지만, 그마저도 거북이가 바빠서 오지 못한 날엔 허탕 칠 수밖에 없다. 내 앞의 모든 팀은 거북이를 보고 행복한 표정으로 센터를 나갔다. 못 볼지도 모른다는 허탈감이 날 엄습하고, 시간은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왔어요!!”

그녀가 왔다니…첫사랑이라도 만난 듯이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센터 직원이 쓴 헤드렌턴 빛만이 주위를 밝히고, 앞사람을 이정표 삼아 좁은 숲길을 걸어갔다. 10분쯤 걸었을까? 밤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바다에 바람과 나무가 만드는 만드는 묘한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칠흑같이 검은 바다 위, 새하얀 보름달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달이 뱉어내는 환한 빛은 바다 위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었다. 고흐 그림보다도 더 신비로운 이 장면만으로도 기다림을 보상받은 것 같았다.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저기 보여요? 거북이가 지금 알 낳을 자리를 탐색하고 있어요.”

모두가 숨 죽이고 조용히 거북이를 향해 걸었다. 내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거북이가 점점 커지더니 드디어 내가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던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쭈그리면 여전히 거뜬하게 나를 태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북이의 몸길이만으로도 놀라웠다. 사람들은 조용히 거북이를 둘러쌌지만, 거북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파는 힘 좋은 뒷발에 튀는 모래가 사람들의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땅 파기를 멈춘 거북이, 갑자기 눈앞에 새하얀 것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거북이가 드디어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알 낳는 걸 본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볼 줄이야! 게다가 내 눈앞에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모두 숨죽였다. 끈끈한 액체와 함께 거북이의 몸에서 떨어지던 그 하얀 알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모든 저항을 흡수했다. 그 먼 바다를 헤엄쳐 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북이. 주변의 부산스러움과 관계없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정말 어른 같았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이건 마치 산부인과 분만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아기 낳는 걸 구경하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어느 날 지구로 외계인이 쳐들어 와 ‘인간’이란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구경한다며 분만실에 우르르 몰려와 있는 것처럼. 하긴 거북이 입장에서 우리는 괴상망측한 외계인일 거다.

 

“몇 년 전에 몬 레포스에서 태어났던 xx예요. 다시 돌아와서 알을 낳네요.”

“우와!”

잘 교육받은 방청객처럼 우리는 감탄했다. 거북이가 땅을 팔 때부터 땅을 다시 덮을 때까지 센터의 직원 아니 연구원은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를 보호했다. 움직임을 통해 몸상태를 확인하고, 몸길이를 재고, 거북이의 신원파악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녀. 한밤중에 거북이를 관찰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지만, 거북이를 향한 눈빛과 배려, 몸짓에서 직업과 별개로 동물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호주에서 본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일하던 센터의 직원

알을 다 낳은 거북이는 땅을 덮고 바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확실히 거북이는 지쳐 보였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 다시 바다로 가기 위해 느릿느릿 걸었다. 사람들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거북이에게 길을 내주었고, 그녀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올 때처럼 그렇게 갔다. 처음 바다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높게 떠오른 달은 어느새 거북이의 등을 비추었다.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비호를 받으며 어미 거북은 그렇게 검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다, 보름달, 방금 출산을 마친 바다거북

인간인 내가 그곳에 서 있는 게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었다.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었지만 사진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의 반의반도 담지 못했다. 그 먼 길을 헤엄쳐서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고 가는 어미의 뒷모습은 위대했다. 게다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들어가는 시크함까지... 11월 말의 자정이 넘은 시골의 바닷가. 사람들은 모두 떠났는데 난 거북이가 사라진 바다와 보름달을 계속 보았다.



* 11~1월은 바다 거북이 와서 알을 낳고 2~3월 사이 아기 거북들이 부화한다. 방문 시기에 따라 알 낳는 걸 보거나 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여행사에도 '몬 레포스 거북이 투어'가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비싼 것 같고, 센터 홈페이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https://www.queensland.com/en-sg/attraction/mon-repos-turtle-centre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GGEY4_8tLQ&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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