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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an 26. 2016

bagnole de l'orne, France

휴양을 위한, 휴양하는 도시

2015년 8월 3일

내 실체는 거지 배낭여행객이지만 오늘부터 2주간은 운전하지 않는 내게는 편한 로드트립이 시작된다. 이 로드트립이 끝나면 난 다시 가난한  나 홀로 배낭여행객으로... 


첫 목적지는 아직도 전혀 발음할 수 없는 bagnole de  l'orne이라는 도시. 파리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있는 곳. 아무 이유 없이 친구의 부모님이 그곳에서 요양 겸 휴가를 가 계셔서 같이 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만난 기아자동차 건물. 그 위로 보이는 무려 7년간의 보증기간. 이것저것 다 따지고 보면 12년까지도 보증기간을 받아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유독 긴 보증기간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혼자 구시렁대었더니 친구가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사람들이 기아를 어떻게 알고, 믿고 사겠니? 저 긴 보증기간 때문에 사람들이 믿고 사기 시작했어.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 같은데." 

워낙 명차가 많은 유럽이라서 유러피안의 생각과 기아의 전략도 어느 정도 해는 간다만, 그래도 너무 길지 않은가...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파리를  벗어날수록 초원의 연속이다. 고속도로 근처의 초원에서는 소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와우! 이렇게 동물들이 자유롭게 풀 뜯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언제였던지... 옆으로 소들이 지나갈 때마다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가슴 가득 행복함을 느꼈다. 이런 장면을 보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기도까지 드리며...

드디어 도착한 도시.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호수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생긴 듯한 집들. 날씨는 여전히 화창해서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 아기자기한 풍경이지만 사실 이 도시는 어르신들의 요양을 위한 도시이다.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라 마사지와 더불어 여름이면 전국의 어르신들께서 이곳으로 요양을 오신단다. 덕분에 섹시한 젊은이들 대신 평안한 노후를 즐기는 많은 어르신들로 도시의 풍경이 왠지 더 느리고 평화로워 보인다. 

내가 묵었던 파리 외곽의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손님이 흰머리의 노인분들이라 '고령화 사회'란 단어가 바로 떠올랐는데, 이곳은 더 심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분들이 다 노인분들. 그들만의 리그에 내가 억지로 끼어든 느낌이 든다...

미니골프를 즐기는 가족들

아직 골프는 비즈니스용이나 과시용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자란 나라서, 가족들이 미니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낯설다. 하지만 막상 체험해 보니 상당히 재미있다. 골프를 이렇게 가족놀이로, 레저용으로 즐길 수 있다니 이렇게 또 하나 배우는구나. 내 고정관념 하나가 또  헐거워진다.

도시를 거닐며 내가 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보통 여행 가는 파리 이외에 이런 도시까지 방문하게 되다니... 아무리 전통적인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도 분명 파리는 대도시라 메트로폴리탄의 느낌이 없을 수 없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시골이다. (물론 휴양지로 개발은 좀 됐지만...) 파리의 회색 건물과 달리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주변 풍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정말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이틀 후에 정말 프랑스의 시골을 또 가지만은, 파리가 아닌 프랑스의 시골에 와 있다니, 나 정말로 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



이곳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오늘은 경치를 즐기고, 이 도시의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푹 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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