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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l 24. 2017

[불가리아] 불가리아의 성지

보츠코보 수도원, 에센 요새

혼자서 플로브디브를 싸돌아 다니고 일어난 다음날, 할 일 없이 게스트하우스의 식당 겸 로비를 왔다갔다 하던 나는 우연히 수도원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게스트하우스 스탭 아저씨와 어제 이곳에 짐을 풀었던 여자 2명. 저녁에는 현대무용을 볼거라고 예약해둔 터라 할일이 없는 차에 잘됐다 싶다. 그들을 따라 나섰다. 


운좋게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차창 밖으로 도시가 지나가고 불가리아의 산골자기가 나타났다. 작은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는 이 곳에는 불가리아 국민들이 사랑하는 스키장도 있다고 했다. 가을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도 이렇게 추운데 한겨울에는 얼마나 추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바츠코보 수도원(Bachkovo Monastery)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수도사들의 집인만큼 산속에 있지만, 그 역사와 아름다운 수도원 건물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주차장에는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벌써부터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가운데 중앙정원은 하얀 벽돌과 빨간 둥근 지붕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여전히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거주하며 신을 섬기고 있어 건물의 한 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안개가 끼인 산을 바라보는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아름다운 자연에 감사기도를 드릴 것 같다.


외벽은 꽤나 단순한 그림의 연속이지만 유독 입구와 창문의 윗 부분은 신경써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성령의 힘이 너에게 가득 전해져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뜻일까?

수도원의 내부는 밖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꽤 단순한 그림의 반복이었던 외벽에 비해 수도원 안벽, 천장은 말그대로 은혜로움이 가득한 그림이 펼쳐 있다. 마리아와 어린 예수, 그리고 기독교의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날 내려다 보고 있다. 성스러운 분들이 이렇게 날 내려다 보고 있다니 기도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사람이 많았던 바츠코보 수도원을 나와 영묘당(불교의 암자와 같은 곳)에 갔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일이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한동안 산을 걸었다. 가을이 만연한 불가리아에서 뜻밖에 낙엽을 만나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이끼가 가득한 폭포와 들판을 지나 드디어 사람이 지어놓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입구의 작은 십자가 표시를 지나면, 그 안으로 들어가니 성수와 성수를 받아먹는 빈병이 굴러다니고 있다. 이 작은 영묘당의 유일한 창문에도 정성스레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고 있고, 마리아와 예수의 그림이 소박하게 이곳의 목적을 말해준다. 한창 타고 있었을 초는 이제 검게 문드러졌다. 영묘당을 나와 뒤에서 바라보니 건물이 꽤나 앙증맞게 생겼다.

아저씨는 우리를 데리고 영묘당 두 군데를 더 갔다. 특히 한 군데는 영묘당을 넘어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영묘당을 지을 당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지만 감사한 일이 일어나서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마리아보다는 이 좁은 돌계단을 만든 사람에게 더욱 경외심을 느끼며 올라가면 그 어떤 곳보다 작은 영묘당이 나타난다. 하지만 냉기가 돌았던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엔 온기가 가득하고, 더 많은 꽃과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진짜로 산넘고 물건너 이곳까지 찾아오는 신도들의 독실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해가 10시에 지는 한여름에 시작한 유럽 여행. 한 계절이 비켜나고 다른 계절이 찾아왔다. 낙엽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몇 번이고 일행에서 뒤쳐져 사진을 찍곤 했다. 가을의 산은 세계 어느 나라에 있든지 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단풍을 이곳에서 보다니 행운이었다.

수도원 앞에서 파는 버팔로 요거트를 샀다. 불가리아 요거트는 달지 않아서 항상 설탕 한스푼을 넣어 먹었다. 불가리아답게 정말 다양한 요거트가 있다.


등산을 마치고 나온 길, 아저씨는 우리를 데리고 30분을 더 달렸다. 이렇게 불가리아의 산을 드라이브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도착한 곳. 이제는 초라해진 Essen’s Fortress, 에센 요새. 말이 요새이지 남은 거라곤 포를 쏘았을 거라고 짐작되는 포대와 병사들이 예배를 드렸을 작은 교회뿐이다. 

빨간 끈을 왜 매달아 두었을까?

목사님이 이곳에 사셨을까? 예배 때마다 산을 타셨을까? 어느 쪽도 전혀 쉬워보이지 않는다. 예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전혀 허리를 고려하지 않은 작은 나무의자 열댓개와 목사님이 말씀을 전했을 곳으로 보이는 교단. 그것도 그렇지만 이 높고 먼 곳까지 교회를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어떻게 운반했을지 감탄이 나온다. 

대단하다. 여기까지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다.
불가리아 전통 물병? 사둘 걸 그랬나 지금에서야 갖고 싶단 생각이 든다.

지금은 호적하고 조용한 바람소리만 들리는 이곳이 옛날에는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이곳까지 꾸역꾸역 올라오던 적군이나 이곳에서 항상 경비태세로 지냈을 사람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정말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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