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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Nov 03. 2017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그랬다

 불가리아 변태가 소피아에 도착했다며 나를 떨궈준 곳은 소피아의 변두리 지역이었다. 처음엔 이 변태가 내게 앙심을 품고 다른 곳에 내려준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공장과 넓은 밭만 있었지만, 그 차에서 무사히 내린 자체가 다행이었다.

초록 불이 켜지면 말 달구지도 함께 길을 건너는 이렇게나 정겨운 곳이라니!


 드디어 집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여기가 소피아인가요? 소피아 시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영어를 못한다며 손사래 치고 가는 모습이 한국인들의 그것과 닮아서 웃음이 났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내 눈에 들어온 십 대 소년 한 명. 저이는 영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다가가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그는 못 알아들었다.

 “Big, Big church. Church. CHURCH!!!”

 소피아에 대해 아는 거라곤 사진에서 본 큰 성당(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뿐이었는데 아무것도 못 알아듣던 그 소년도 큰 성당은 알아들었는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드디어 트램을 탈 수 있는 정거장이 나타났다. 얼마 후 80년대에 출발했을 것 같은 트램이 정거장에 도착했고 소년도 함께 탔다. 어떻게 요금을 내야 하는지 몰라(소년은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다.) 또 무임승차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이 내리며(다행히도 어디 가는 길이었나 보다.), 가던 길로 쭉 가라는 손짓을 했다. 


시골 읍내였던 차창 밖 풍경이 하나 둘 높은 건물로 바뀌었다. 근데 도대체 어디서 내려야 되지? 이쯤이면 완전한 소피아 시내인 것 같은데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예약해 둔 호스텔 주소만 하릴없이 쳐다보다 뭔가 큰 성당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내렸다. 


마침 지나치던 호텔 입구에 서 있던 직원에게 호스텔 주소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물었다. 엄청 친절한 그는 지도 한 장을 가져와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다른 직원도 쪼르르 나와서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더니 서로 본인의 길이 더 찾기 쉽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난 그들을 말렸다. 뭔가 굉장히 시트콤 같았던 그 상황을 뒤로하고 나왔다. 그 이후로도 불가리아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그리고 불가리아 변태는 점점 잊혔다. 이래서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건가?


웅장한 소피아 대법원과 소피아의 상징인 사자 동상

갈수록 화려한 건물이 보인다. 여기가 소피아의 중심지겠구나. 예전 건물도 남아있긴 했으나 이곳은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왜 사람들이 플로브디브가 더 아름답다고 했는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호스텔이 있던 곳은 소피아 최대의 쇼핑거리가 있던 곳인데 플로브디브에서 거의 보지 못한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널려 있었다. 아름다운 공원의 끝에는 모두가 다 아는 호텔이 서 있고,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띄라고 간판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어물어 도착한 호스텔은 꽤나 괜찮았고, 넓은 다락방 구석에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드러누웠다. 플로브디브에서 2시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소피아인데 이상하게 하루는 꼬박 걸려 이곳에 온 듯 지쳤다. 왠지 늘어져 있으면 그날 기분이 망가질 것 같아 무거운 몸을 끌고 프리워킹투어에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이는 프리워킹투어의 참가자들. 그들에게 기를 한껏 받았다. 그날따라 유독 소피아에 출장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소피아를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눈은 내 눈보다 맑았다. 여행에 찌들어버린 건가? 아님 변태를 만난 피곤함인가?


다음날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건축물, 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을 다시 찾았다. 어젯밤 가로등불에 비치는 성당을 본 게 다였는데 낮에 다시 보는 성당은 정말 아름답고 웅장했다. 흰색과 하늘색의 적절한 조화, 원과 사각형의 적절한 조화. 내가 보는 성당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하나의 완전체였다. 게다가 하나의 이정표처럼 성당을 중심으로 라운더 바웃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를 중심으로 도로가 뻗어가는 모습은 성당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덕분에 3일 내내 어느 방향, 어느 위치에 있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성당을 지나며 행복을 느꼈다. 성당 내부는 플로브디브에서 봤던 독특한 불가리아 정교회 그림이 예배당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꼭 여행객이 아니라도 시민들이 꾸준히 찾는 곳인지 아무 조명이 없어도 밝혀 놓은 촛불로 내부는 환했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특히 소피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성당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때문에 많이 묻혔지만 주변에는 작고 아름다운 성당들이 많았다. 각각의 성당은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큰 성당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많은 눈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오히려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작은 성당에선 신부님이 너무 오가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봐서 불편했다.

그래도 성당 앞마당 나무에 매달려 있던 종은 참 아름다웠다.

올드타운과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조용했던 플로브디브와 달리 소피아는 어느 곳을 걸어도 크고 시끌벅적함의 연속이다. 옛 건물도 꽤나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모던함이 넘치는 건물과 24시간 바쁜 거리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플로브디브에 많이 가려진 게 아닐까 싶었다. 

소피아에서 가장 신기했던 버스. 운전하기 편할 것같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는 거리에 중고책시장이 문을 닫고 있다. 내리는 비에 책이 젖어 못 쓰게 될까 상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점점 거세지는 비를 뚫고 종종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광장 한쪽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무슨 일이야? 나를 빼놓지 말라고!'

사람들 틈에 파고들었다. 빨강과 검정이 섞인 제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건물 한쪽을 바라보고 서 있고, 중요해 보이는 한 남자와 또 중요해 보이는 남자가 경호를 받으며 악수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중계하는 카메라와 기자도 보였다. 불가리아의 대통령과 국빈인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멋들어진 건물로 두 사람이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도 군인들 (아마 경비대 같은)은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짧은 퍼프먼스를 한 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법원을 지나면 높게 솟은 소피아 동상이 서 있다. 원래 레닌 동상이 세워져 있던 곳인데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동상을 함께 파괴했고, 그 자리를 소피아 여신이 대신하고 있다. 한번 왔던 여행지라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내가 본 것이 변한 것을 확인하는 일. 이게 여행의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30년 전에 독일을 여행했던 사람은 분단된 나라를 경험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2017년 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남한을 여행하지만, 몇십 년 후 통일이 된다면 그때 사람들은 하나가 된 한국을 여행하는 것일 게다. 지는 해를 등지고 서 있는 소피아 동상이 아름답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의 낙서?!

소피아는 도시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아마도 몇 년 후에 다시 오게 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질 것 같았다. 다시 왔을 때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곳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소피아의 미니슈퍼마저 화려한 쇼윈도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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