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
임신, 출산, 육아. 막 돌을 지난 아기를 기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소요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아기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나도 그러고 싶어 일도 많이 줄였다. 하고 싶은 일도 줄인 마당에 브런치에 글 쓸 시간이 있겠나.(+여기에 글 쓴다고 내게 당장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기가 잘 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는 일하거나 쉰다. 쉴 때는 진짜 쉬어야 한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 퇴근 후에도 지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육아를 하다 보니 오후 3시만 되어도 피곤함이 생긴다.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가 이렇게 많은 일인 줄 몰랐다. 그런 마당에 단 30분이라도 가만히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내 체력이 방전되어 만성 피로에 시달리며 괜히 잘못도 없는 가족들에게 짜증내기 일쑤였다.
가끔씩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내 머릿속을 막 떠다니고 나는 머릿속에서 한 문단을 완성하고 기승전결을 짜지만 그걸 컴퓨터 화면으로 올리기까지 마치 산 하나를 넘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만다.. ㅠㅠ
지금까지 내 브런치의 주요 독자는 내가 싱가포르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직장인이란 생활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일을 찾는 것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오래 지속하는 게 더 힘든 법인데 나는 전자는 잘 하지만 후자를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독자에게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 느낌도 종종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 주제에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간혹 가다 좀 가볍게 접근하면 될 거라 생각하다가도 막히기가 일쑤. 회사생활을 약 10년 정도하고 이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태에서 취직 이야기를 하는 게 모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취직과 이직을 도와주는 게 참 좋기에 그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쌓이면 주제에 대한 고민은 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시 첫 번째 이유로 돌아간다. 공부할 시간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 ㅎㅎㅎ
예전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어느 작가님이 했던 말.(김영하 작가인지 다른 작가인지 헷갈림)
이만큼 글을 쓰고 구독자가 늘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재도 그렇거니와 비록 한 번도 보지 못한 작가와 구독자 사이에도 내적 친밀감이 생겨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글을 좋아하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는다. 나는 그게 좀 고민이었다.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는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면 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외국 생활, 외국에서 누구를 만나고 연애를 어떻게 하는 것까지 다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차마 그렇게는 쓸 용기가 없다고 해야 할까? 관종인 듯 관종 아닌 관종 같은 나..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파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라면 이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보다 훨씬 글도 잘 쓰시고 그 글을 찾는 사람도 많은 사람조차도 자기가 가진 모든 걸 팔아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안 하고 글을 계속 쓰려는 나는 게으르고 비겁한 게 아닌가?
한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랩탑을 켜고 30분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가장 맑은 정신에서 내 안의 가장 순도 높은 것을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정말 사랑했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뿌듯함 그 자체였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스스로 치유받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어쩌면 브런치란 게임에 참여하고 그 게임의 퀘스트를 하나씩 달성해나가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게임에서 어느 정도의 레벨을 달성하자 그새 지겨워지고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방황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나 자신은 누구였던가?
이렇게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가 섞여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이 두렵게까지 여겨졌다.
앞으로도 사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글을 하도 안 쓰니 구독자도 정체 혹은 줄어드는 것도 눈에 보인다.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아무튼 글을 안 쓰는 걸 상상해 보면 끔찍하고. 쓰려니 이런저런 것들이 걸리고..
아마도 글쓰기에 대해, 내 글을 봐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이렇게 혼자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도 결국엔 다시 정신 차리고 글을 써보려는 마음이니.. 그 마저도 끌어안아보면서 이제는 조금 가볍게 편한 마음으로 주제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내 생각을 써봐야겠다.
처음 브런치에 들어오던 그 마음처럼.
https://brunch.co.kr/@swimmingstar/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