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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an 07. 2016

[번외]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 중 끄적거려 보았던 글을 살짝 수정함.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정말 좋은 대답을 내놓고 싶다. 세계여행이 꿈이에요. 열심히 일했으니 쉬고 싶어요.
뭐 위에 말들이 다 틀린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면 할 게 없어서 여행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일을 싫다. 아니 나를 잘 모르는 상태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그렇게 시작하면 몇 년 못 버티고 나올 거 뻔하니까.


사실 여행보다는 꼭 돈을 버는 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다만 다른 세상을 더 보고 싶고(그래서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 왔고), 이렇게 끄적거리는 건 하고 싶어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여행한다고 하면 답이 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건지, 아니면 사회가 주입시켜 내가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 일인 지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인데…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깨닫고 그것을 하다가 죽는다면 그것으로 후회 없는 인생이 아닐까?

                                     

최근 그만둔 직장도 내가 좋아서 입사한 회사가 맞다. 한국에 있을 때 짧게 했던 무역 업무(이것도 원래 내 업무가 아니었는데 추가로 주어진 업무였다.)가 재미있었고, 그 무역 업무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인지를 알기 위해서 싱가포르 내에서 이직을 했었다. 하지만 입사한지 얼마 후, 꼭 무역회사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결론은 얻었다.(그러고도 2년 더 일했다.) 무역의 본질이 해외영업이고, 결국 외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주된 일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다루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스킬을 사용하며 일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가 만족하는 지점까지 일을 하는 편인데, 내가 다루는 상품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 굉장히 화가 났다. 하지만 무역회사는 중개인의 입장이라, 공급자와 고객보다도 상품에 대해 모르는 때가 나올 수가 있다. 특히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다루는 상품은 정말 분야도 다른 것들이 10가지가 훨씬 넘었는데, 회사 사정상 그것을 내가 다 처리하였고, 내가 고객보다 그 상품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될 때 내가 느꼈던 그 피로감은.. 좀 컸다. 고객과 혹은 공급자와 소통을 하면서 내가 시원히 답변하지 못할 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나올 때면 아쉬움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왜 그런 것까지 알려고 노력하느냐고 충분히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글쎄..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팔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행복했던 것이다.

아 근데 그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려 나름 노력했으나, 나 자신이 회사 업무로 번아웃 되면서 그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것저것 그때그때 관심 있는 것들을 시도해 보기도 했으나, 나 자신이 너무 지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힘들었다. 그것을 못 찾고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 새벽에 일어나 울기도 몇 번씩 울고, 무얼 봐도 행복하지 않았던 상태, 한숨만 나오던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우울증 걸릴 것 같아서 아무래도 안 되겠네. 나 회사  그만둘게..”
엄마에게 참 미안하지만, 그래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 중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면 


평소 못하던 걸 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거나,

(예를 들면 난 처음 만난 벨기에 여자 여행객과 방값을 아끼기 위해 같은 방을 썼다. 오토바이는 뒷좌석에조차도 타는 걸 정말 무서워해서 앞사람 허리를 끌어안다시피 정자세로 항상 탔었는데, 캄보디아에 혼자 여행 갔을 때의 난 어느새 오토바이 뒷좌석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주변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또, 여행하다 만난 친구들이랑 한 오토바이를 셋이서 타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다 과적단속에 걸려서 돈을 찔러주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전에 알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최소한의 물건만으로도 잘 사는 나를 발견하고,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여행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유의 덧없음을 아주 잠깐이나마 몸으로 깨달았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깨달음이지만 스님도 남자라서 내게 집적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거나 두려워하는 경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느 곳에 막상 가 보았으나, 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때,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거나 혹은 이건 정말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여행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오토바이를 겁내 할 것이고,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탈하지 못한 스님은 경계해야 하며(ㅋㅋ),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하지 않았다면, 저런 경험들을 하고 그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열거한 경험들은 모두 캄보디아 열흘간의 여행에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그런 깨달음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어떤 것을 할 때 내가 행복하고 최상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쾌감을 주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을 읽으면 뇌가 울리고, 가슴도 뛰고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지는데 그런 책들은 내 인생에 다른 이정표를 제시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갖게 한다. 여행을 하는 것도 하나의 책을 읽는 그런 과정이니, 그런 뇌가 울리고, 가슴이 뛰는 느낌을 갖고 싶다. 그리고 그 느낌의 연속에서 내가 답을 얻을 수 있겠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나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를..


PS. 지금 와서 읽어보니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글로 구체화시키다 보면 내가 유럽 여행이 끝난 후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더욱 잘 알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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