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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14. 2015

파리 성당 나들이,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들

in 파리, 프랑스

2015년 7월 28일

아침 10시 반쯤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그곳.


벌써 줄이 이렇게나 길다. 역시나 오늘도 이상하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며, 그 줄의 끝에 나도 동참한다. 성당인데, 그 크기가 정말 엄청나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내가 봐도 정말 웅장하고, 대단한 건물이다. 건물의 크기에서부터 그 당시 기독교가 왕권과 더불어 얼마나 강력한 종교였는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이 대성당에서 황제의 결혼식 등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치렀다고 하니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곳.

어제처럼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어가 잘 들린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삶이 질이 정말 많이 향상되었다는 게 이런 곳에서 보이는 듯하다.

감사하게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입장료는 무료 :)

줄서서 기다리기 지루했던 아이가 그만 비둘기에게 포위 당하다

아무리 지루해도 그렇지. 아이가 비둘기들에게 포위당했다. 심지어 밟히고 있다. 아이에겐 순수한 동심으로 비둘기와 함께하는 시간이지만, 내게는 그저 세균 덩어리 비둘기들. 도시의 비둘기가 얼마나 더러운데...(ㅋㅋ) 참고로 파리에서 비둘기는 "Flying rat"(날아다니는 쥐)이라고 불린단다.


생각보다 짧게 40여분 간을 기다린 끝에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들은 대로 유럽 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는 대단하다. 각 창마다 성경의 인물들로 꽉꽉 채운, 단 하나도 중복되는 그림 없는 하나하나가 놀라운 작품들.


잔 다르크 동상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닌데도 잔 다르크 동상이 대성당 안에 있다. 늘 비장한 그 모습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잔 다르크.

운 좋게도 미사 시간에 겹쳐 미사 드리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도 누구든지 원하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도 참 기억에 남는 일일 게다. 나도 교회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 여행 가서도 (교회를 못 찾아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었다. 1800년대에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를 지배할 때 지어진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였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나저나 건물 내부의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경건함과 존경이 아닌 위압감이 들 정도의 높이다. 이 건물의 높이만큼  강력한 왕권과 신권 아래에서 그 당시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과 베드로 앞에 나타나신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속 인물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니, 왠지 귀엽다. 이때는 몰랐다. 앞으로 유럽을 다니면서 바을과 베드로를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지 이때는 미처 몰랐다.


유럽 여행 무사히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는 성당을 나와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해 보았으나, 줄이 너무 길어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밀려오는 죄책감. 항상 어떤 관광지를 제낄 때마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미디어가 나에게 주입시킨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봐야 할 것"에 것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불성실함 때문이리라.

줄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시테섬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시테섬과 본토(?) 파리를 연결하는 다리에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자물쇠가 달려있다. 정말 한 치의 틈마저도 모두 이용하여 빼곡히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도대체 누가 이걸 처음 시작했을까? 이젠 어디를 가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 클락키에도 몇 달 전에 생겼었으니...

이 자물쇠를 단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 열쇠를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이런 자물쇠들을 보면 그냥 다 끊어버리고 싶다. "다 헤어져 버려라!"를 외치면서. 


이 자물쇠 참 예쁘다.

대성당 근처의 좌판에서 예전 책이나 그림, 포스터 등을 팔고 있다. 강따라 늘어선 고서점들이 운치 있다. 사야 된다는 부담 없이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내가 눈길을 주든 안 주든 주인들은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고서점과 어울리는 하얀 머리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물 끄러니 길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크아아아 퀸QUEEN이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느낀 그 향수, 왠지 편한 느낌이 여기도 있다. 비록 내가 아는 가수와 영화의 포스터보다는 모르는 내용이 더 많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과 아련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좌판 고서점을 뒤로 하고, 시테섬 근처에 위치한 역시 스태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생샤펠 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성당에서는 입장료를 받네. 기준이 뭐지? 입장료 대신 4일간 파리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다릴 필요 없이 입장이 가능한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구입했다. 그리고 4일간 요긴하게 사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다른 분위기로 이렇게 천장을 꾸며 놓았다. 색색깔의 천장이  성당이라기보다는 큰 궁전의 방 하나와 같은 그럼 느낌이다.

예술에 무지한 내 눈에는 생 샤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나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비슷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정문 위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곳에 와서야 어릴 때 RPG 게임을 하며 내가 열심히 죽여댔던 가고일이라는 괴물이 무엇인지 마침내 여기서 알게 됐다.  저승세계에 살면서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이라고 하는데, 교회에 경외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혹은  악령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가고일을 이렇게 지붕 위에 조각해서 두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각종 게임들의 괴물들은 고전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게 참으로 많다. 가고일도 그렇고, 세이렌, 오크, 드워프, 트롤 등등... 역시 고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의 인생에 들어와 있다.

성당 옆에는 법원이 있었는데 법원 건물도 아주 그냥 끝내줬다.

추위를 피하고(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구름이 끼어 추웠다.) 점심을 먹으러 아무 식당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Crepe이 너무 맛이 없었다. 주변 관광지 믿고 맛에는 신경을 쓰지 않나 보다. 하지만 춥고 배고파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역시 관광지 주변의 식당은 아무 데나 덥석 들어가면 위험하다.


그리고 이제 메트로를 타고 말로만 듣던 그 몽마르트로 간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얼마나 소매치기가 골칫거리이면 지하철역에서부터 이런 방송을 할까? 하지만,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그런 방송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된다. 몽마르트까지 가는 길이 정말 사람으로 빽빽해서 소매치기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게다가 이 길이 맞나 저길이 맞나 어리바리한 관광객으로선, 소매치기범들에게 밥이 되기 십상일 듯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여쁜 자태를 드러내주는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장사꾼들. 이렇게 짝퉁 가방을 '길'에서 파는 곳은 태국과 베트남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곳 유럽도 아니 관광객이 모이는 곳에 예외는 없나 보다. 그리고 이 모든 가방에는 "made in Thailand"가 적혀 있다.:p 전 세계 짝퉁 가방 시장의 규모도 상당한 가보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팔찌를 채워주려고 달려드는 많은 흑인 사람들도 불법 장사꾼이다. 팔찌를 차는 순간 돌변하여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이곳에서 불법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이라 더 씁쓸했다. 흑인 프랑스인인지 아니면 밀입국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인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경제와 삶의 질 차이가 느껴진다. 이 차이가 과연 없어질 날이 오기는 할까?

언덕 위에 다 올라와 보니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이는 것이 마음에 딱 든다! 


성당 안에서 사진을 못 찍어서 좀 아쉽지만, 우선 사크레쾨르 성당을 돌아보았다. 각 나라별로 기독교를 위해 순교하신 분들의 사진과 소개가 있는 점이 좀 특별했다.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님도 이곳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프랑스인 신부를 처형했다는 명분으로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했던 이야기를 프랑스인에게 해 주니 돌아오는 말.

"정말? 우리가 한국에 쳐들어 갔었다고? 뭐 놀랍지도 않네. 우리 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아무튼 내가 믿는 어떤 것을 향해 온몸을 다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그들의 기에 눌리는 그런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생에서 그런 것이, 그런 때가 한 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에서 다시 몇 백개의 계단을 올라 이렇게 샤크레쾨르 성당의 꼭대기, 몽마르트르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정말 파리 시내가 다 보인다. 저기 에펠탑도 보이네.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섬기는 사람들.. 경건한 마음으로 이 계단을 올라 이곳에서 도시를 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곡대기의 맞은편 교회 종탑

그렇게 성당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다시 내려가는 길, 아름답게 노래하던 몽마르트 시스터즈와

그 어떤 도구 없이 오직 연필과 스케치북만으로 아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거리의 화가들.



몽마르트, 예술가들의 성지였던 이곳에서 고풍스러운 예술의 분위기를 잔뜩 기대했지만 역시 관광객들로 온통 북적대는 통에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거리의 예술가보다 더 많은 기념품 상점들과, 감성 없는 카페들.

전설로 남아있는 엄청난 예술가들.  모파상, 세잔, 고흐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던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던 곳이었다는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고 싶었는데 그 느낌은 소음에 묻혀 버렸다.

유럽 예술의 수도가 최근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파리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물가가 저렴한 베를린으로 옮겨가 최근 젊은 예술가들은 베를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베를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몽마르트 일정까지 마치고, 오늘 저녁 약속이 되어 있는 일행들을 만나러 갔다.  완벽한 프랑스 정통 코스요리. 참 감사하게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 있다. 메뉴판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문득 나의 메뉴판과 남자가 보고 있는 메뉴판에 다른 점이 있단 걸 알았다. 남자의 메뉴판에는 각 요리의 가격이 표시되어 있고, 여자의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남성에게 돈 내라는 뜻이란다. 농담으로 다른 분들에게 "여기는 천국!"이라고 말했는데..

그냥 좀 씁쓸하다. 요즘 레스토랑은 모두에게 동일한 메뉴판을 거의 다 쓰지만, 예전에는 다 이렇게 따로 나눠주곤 했단다. 이게 여성을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는 여성이 경제력이 없었으니) 돈을 낼 능력이 없으니 남자가 사 주는 밥을 잘 먹어라는 건지... 확실히 유럽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이렇게 높아진지 얼마 안 되었구나. 하긴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게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레스토랑 메뉴판이 바뀐 역사도 그리 글지 않을 듯하다. 


아뻬오(Apero)부터 애피타이저, 메인 메뉴, 디저트, 치즈 그리고 커피까지... 장장 3시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이런 긴 저녁식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식사와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비싼 요리가 아니더라도 저녁 시간의 여유를 통해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게 삶의 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PS. 이날 계산은 여성분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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