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내 첫 책은 독자가 아니라, 세상을 후려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은 호기로웠다. 아니, 미쳐 있었다.
자가출판으로 내놓은 첫 장편 『반반한 마을』.
판형은 B5.
보통의 소설책(A5)보다 훨씬 크고 넓은, 전공 서적이나 문제집로나 쓰는 그 사이즈.
거기에 꽉 채운 600쪽.
일반적인 소설책 규격으로 환산하면 800쪽이 훌쩍 넘는 분량이었다.두께는 손가락 두 마디를 넘었고, 무게는 묵직하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책등으로 사람을 치면 전치 2주는 나올 법한 무식한 물성.
가격은 더 가관이었다.
32,300원.
이름도 없는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 3만 원이 넘는다.
치킨 한 마리 반 값이고, 국밥이 네 그릇이다.
서점 매대에 놓인 베스트셀러들도 1만 5천 원 하는 세상에, 나는 무슨 배짱으로 저 가격표를 붙였을까.
그때는 타협을 몰랐다.
편집? 분권? 가격 책정 전략?
그딴 건 장사치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그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단 한 문장도 덜어내고 싶지 않았다. 가난하고 척박한 내 현실을 갈아 넣어 쓴 글이니, 그 무게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물은 '책'이라기보단,
나의 아집이 뭉쳐진 '덩어리'였다.
독자가 들고 읽을 때
손목이 나갈지 말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읽으려면 읽고, 말려면 말아라.
대신 이 안에 담긴 건 진짜다."
그 32,300원이라는 미친 가격은, 세상에 대한 나의 선전포고이자 방어기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독자에 대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 불친절함. 하지만 동시에, 그 무식한 두께가 그립기도 하다.
어떤 요령도 피우지 않고, 잘 팔리는 공식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쓰고 싶은 이야기만으로 800쪽을 꽉 채웠던 그 미련한 열정. 내 첫 책은, 누군가의 서재에 꽂히기보다 누군가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었던 나의 서툰 분노였다.
그리고 2026년,
그 미련했던 '벽돌'을 깨부수고 다시 제련했습니다.
독기만 가득했던 600쪽짜리 둔기는,
이제 살을 에는 듯한 쇠 맛을 품은
3권의 예리한 칼날이 되었습니다.
『반반한 마을』 개정판 (전 3권)
Coming Soon.
가장 완벽한 흑백의 지옥에서,
붉게 타오르는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