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Soma)를 뱉고, 불행해질 권리를 택하다

10화 : 『멋진 신세계』

by 현영강

​남들은 독후감 숙제로 읽는다는 그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엎어버렸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책 속 세상은 완벽했다. 가난도 없고, 질병도 없고, 늙음도 없다.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땐, '소마(Soma)'라는 알약 하나만 삼키면 즉시 행복해진다.모두가 시스템 안에서 안전하고, 모두가 정해진 계급 안에서 평온하다. ​책장을 넘기는데 구역질이 올라왔다. 활자 속 세상이 내가 강요받던 현실과 소름 돋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영강아, 공무원 해라. 그래야 편하게 산다."
"기술이라도 배워라. 굶지는 말아야지."


​어른들이 내미는 그 '안정적인 조언'들이 내겐 '소마'처럼 보였다. 내 불안과 고민, 꿈틀거리는 욕망 따위는 약 한 알로 마비시키고, 그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녹슬지 않는 부품이 되라는 명령.생각하지 말고, 고뇌하지 말고, 주는 대로 받아먹고 얌전히 늙어가라는 회유. ​나는 그 '가짜 천국'이 역겨웠다.
​책의 후반부, '야만인' 존은 문명 세계의 총통에게 이렇게 외친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 그리고 죄를 원합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퓨즈가 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래, 이거다.
나는 행복한 돼지가 되느니, 고통스러운 인간이 되겠다. 안전한 감옥에서 주는 사료를 먹느니, 거친 황야에서 굶주리며 짖겠다.



​그날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완벽해 보이는 세상의 껍질을 찢고, 그 안에 숨겨진 고름과 비명을 기어이 끄집어내어 전시하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소마'를 먹여 재우는 게 아니라, 뺨을 때려 깨우는 일이다.
​나는 행정학 전공 서적을 덮고, 빈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 추한 것들, 아픈 것들, 그러나 '진짜'인 것들에 대해.


​그 선택의 대가는 혹독하다.

허나 그 결과,지금 나는 적어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멋진 신세계'에서 추방당한 자발적 망명자. 나는 그 야만적인 자유가 마음에 든다.
​오늘도 나는 소마 대신 쓴 커피를 마시며, 이 빌어먹게 생생한 고통을 문장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