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없이 짓는 위태로운 성(城)

13화 : 나는 쓰면서 길을 만드는 미련한 건축가다.

by 현영강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소설가가 존재한다고. 하나는 판을 완벽하게 짜고 쓰는 사람, 다른 하나는 쓰면서 판을 만들어가는 사람.


나는 명백히 후자다.

이유는 단순하다.


머리가 안 좋아서 그렇다.


복잡한 복선을 미리 엑셀 파일에 정리하고, 인물의 동선을 그래프로 그리고, 결말까지의 로드맵을 머릿속에 넣어두는 그 고지능적인 작업. 나는 그게 안 된다. 내 RAM 용량은 거기까지 버티질 못한다.


그래서 나는 무식하게 쓴다. 첫 문장이라는 삽 한 자루만 들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그 구덩이가 우물이 될지, 무덤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파다 보면 물이 나오겠지, 아니면 뼈라도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지금껏 출간한 내 소설들.

무식한 두께를 자랑했던 『반반한 마을』도,

알라딘 미스터리 랭킹에 오른 『식물인간』도,

출판사와 영상화 계약을 맺은 『세 굴레 출판사』도.

전부 제대로 된 틀 따위는 없었다.


그저 '상황' 하나를 던져두고, 그 안에 '미친 놈' 하나를 집어넣은 뒤, "자, 이제 너 마음대로 뛰어놀아 봐." 하고 방관했을 뿐이다. 그러면 캐릭터들은 지들이 알아서 사고를 치고, 사람을 죽이고, 사랑을 하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나는 그 뒤를 헐레벌떡 쫓아가며 받아적기 바빴다. 지금 쓰고 있는 네 번째 장편, 『조향사』 역시 마찬가지다. 향기를 다루는 주인공. 그가 맡게 될 피비린내. 설정은 매혹적이지만,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작가인 나도 모른다.


다만, 이 방식은 위험하다. 쓰다가 막히면 답이 없다. 300페이지를 썼는데 앞뒤가 안 맞아서 통째로 날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미련한 방식을 고칠 생각이 없다. 아니, 못 고친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길은 안전하지만, 지루하다. 나는 지도 없이 미로를 헤맬 때의 그 공포와, 우연히 출구를 찾았을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을 사랑한다.


내가 다음 페이지 내용을 모르면, 독자도 모른다.

내가 쓰면서 소름 돋으면, 읽는 사람도 소름 돋는다.

나는 그 전율의 힘을 믿는다.




길을 잃으면 좀 어떤가.

그 헤매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결국엔 이야기가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