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속세를 떠난 큰아버지와, 속물인 조카.
내 휴대폰 연락처에는 독특한 연락처가 하나 저장되어 있다. '해덕 스님'. 부산에 계신 나의 큰아버지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셨고, 당시 조선학 박사까지 따신 분이다.
그러나, 그분께선 오래전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셨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번뇌를 끊고, 부처의 길을 걷는 수행자.
반면 나는 속세의 한복판,
그것도 가장 치열한 자본주의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소설가다.
가진 게 없어서(빚) 괴롭고, 번뇌가 끊이지 않아(항진) 약을 먹는 중생. 우리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다.
스님은 바람과 구름과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이번 달 생활비와 카드값과 책 판매량을 이야기한다.
"스님, 날이 찹니다. 평안하신지요."
이 점잖은 안부 문자의 속뜻은 사실 비루하다.
염치도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분에게 돈을 달라는 조카라니. 나는 내가 속물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속물처럼 느껴져,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 수십 번 망설인다.
산속의 맑은 공기를 나의 탁한 욕망으로 오염시키는 기분. 하지만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답장이 오면, 나는 또 무너진다. 꾸지람 대신, 훈계 대신, 짧고 담백한 입금 알림. 그리고 뒤이어 오는 메시지.
"글 쓰기 힘들지요? 좋은 글 많이 쓰면 돼~"
그분의 돈은 일반적인 화폐와 무게가 다르다.
신도들의 정성일 수도 있고, 스님의 절제된 생활이 모인 것일 수도 있다. 그 무거운 힘을 받들고,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다.
가끔 생각한다.
스님이 산속에서 올리는 기도의 힘으로써
내가 근근이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분은 나의 탐욕과 불안마저도 거대한 '품'으로 안아주시는 게 아닐까.
나는 오늘도 속으로 기도한다.
스물 때, 이 길을 걸을 때부터 품은 마음이다.
"세상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만족을 느끼면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언젠가 내 글에서도
그처럼 깊은 향이 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