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머리칼들 사이, 나는 '젊은 피'였다.

23화 : 소설가협회 정기총회 참관기, 그리고 목감기

by 현영강

​대구에서 서울 마포까지.


왕복 600km, KTX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닿은 그곳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소설가협회 정기총회. 이름만 들으면 문학의 향기가 진동하고, 꼿꼿한 문인들이 가득 찬 대강당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엔 '공석(空席)'이 더 많았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의자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대부분 희끗희끗한 백발의 노작가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세월이,

그리고 문학이라는 고행의 무게가 느껴졌다.


​"젊은 피가 필요합니다."


단상 위에서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건 의례적인 환영사가 아니라, 생존 신호로, 나는 느꼈다. 협회의 재정은 어렵고, 회원은 고령화되고 있다.


이 거대한 문학의 집단이, 사실은 낡고 가난한 지붕 아래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부이사장님이 나에게 친히 문자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저 이 늙고 병든 숲에 새로 심을 묘목 한 그루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가온 형벌의 시간. 자기소개.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다.


수십 쌍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시상식에 올라가 횡설수설하거나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그들을 비웃었었다.


"준비 좀 해 오지, 촌스럽게."


취소한다. 그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였다. ​나는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했던 멋진 말들은 다 까먹은 채 단 한 문장을 뱉었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독립투사 비장한 각오도 아니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 짧은 찰나에 내 뇌를 스치고 지나간 유일한 진심은 그것뿐이었다.


가난해도, 재정이 어려워도, 여기 앉은 저 백발의 노인들처럼 나도 끝까지 쓰겠다는 것.


박수가 쏟아졌고, 나는 도망치듯 자리에 앉았다.



​총회가 끝나고 다시 대구로 내려오는 길. 차창 밖은 어두웠고, 그 우산만큼이나 내 마음도 묵직했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목이 너무 아프다. 서울의 매연 때문인지, 긴장해서 침을 너무 많이 삼킨 탓인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쓰겠다."는 그 무거운 약속이 목구멍을 긁고 지나가서인지.



​따뜻한 물이나 마셔야겠다.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
내가 늙어갈 곳이, 적어도 외롭지는 않아 보여서.




내 패기,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간 시상식 자리에 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