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신세계 백화점 1층, 그 향기로운 전장(戰場)에서
나는 미친놈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 미친놈이 맞다.
무릎이 튀어나온 헐렁한 파자마 바지,
대충 걸친 낡은 겉옷, 그리고, 슬리퍼.
동네 편의점에 담배나 사러 갈 법한 꼬라지를 하고 내가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신세계 백화점 1층'이었다. 백화점 1층. 그곳은 자본주의가 뿜어내는 가장 화려하고 노골적인 욕망의 최전선이다.
샤넬, 디올, 딥디크, 조 말론.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품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향(香)'을 무기 삼아 호객 행위를 하는 곳.
나는 그 한복판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쇼핑백을 든 귀부인들과 쫙 빼입은 연인들 사이를, 파자마 차림의 남자가 비집고 들어간다.
나다.
직원들의 눈초리가 내 몸에 꽂혔다.
그들의 눈동자가 묻는다.
'저 거지는 뭐지?'
'설마 여기서 구걸이라도 하려는 건가?'
'경비원을 불러야 하나?'
경멸, 의심, 그리고 묘한 공포.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지금 쇼핑을 하러 온 게 아니다.
'탐방'을 하러 왔다. 내 차기작 『조향사』.
향기를 다루는 남자, 냄새로 살인을 감추거나, 혹은 드러내는 이야기. 그 소설을 쓰기 위해선 내 코가 먼저 이 지독한 향수들에 절여져야 했다. 글로 배운 '머스크'와 코로 맡은 '머스크'는 천지 차이니까.
나는 매장마다 기웃거리며 시향지(스멜링 스트립)를 집어 들었다. 직원에게 뻔뻔하게 말을 건다.
"이건 탑 노트가 뭡니까? 베르가못인가요?"
"잔향이 좀 비리네요. 쇠 맛이 섞인 것 같은데."
파자마 입은 남자가 전문 용어를 지껄이자, 직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향에 미친놈이었구나 하는 표정. 그들은 훈련받은 자본주의적 미소로 나를 대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제발 빨리 꺼져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코를 킁킁댔다. 하하하..
달콤한 바닐라, 톡 쏘는 시트러스, 묵직한 우디, 그리고 콧속을 찌르는 알코올 냄새. 이 수많은 향기가 내 폐부로 들어와 섞이고 충돌한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소설이 써지고 있다.
주인공은 이 냄새를 맡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피비린내를 지우기 위해 그는 어떤 향수를 배합할까. 30만 원짜리 향수에서 나는 이 고급스러운 향기가, 누군가에게는 역겨운 위선의 냄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시간 넘게 1층을 돌았다. 내 손에는 수십 장의 시향지가 들려 있었고, 내 몸에선 온갖 향수 냄새가 뒤섞여 정체불명의 악취가 나고 있었다.
백화점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바깥 공기가 코끝을 때린다. 그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파자마를 힐끔거린다. 쪽팔리냐고?
네... 무척요 >_<
나는 방금 수백만 원어치의 '글감'을 훔쳐 나왔다.
돈 한 푼 안 쓰고, 그 비싼 향기들을 내 문장 속에 가둬 버렸다. 나는 주머니 속의 시향지들을 만지작거린다.
이 종이 쪼가리들이 내 소설 속에서 살인 도구가 되고, 사랑의 묘약이 될 것이다. 파자마를 입은 조향사.
백화점 보안요원에게,
끌려나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