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완벽주의자 소설가의 하찮고도 치밀한 강박
사람들은 '소설가의 완벽주의'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린다.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밤을 지새우거나,
문장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수백 번 소리 내어 읽는 고뇌의 시간 같은 것들.
물론 나도 그런다.
(아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내 완벽주의의 본질은 원고지 너머, 아주 하찮고도 기이한 곳에서 발현된다. 바로 내 손가락 끝,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서다. 나에겐 병이 있다. 이름하여 'Caps Lock 확인 강박증'
글을 쓰다가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시선이 키보드 좌측으로 쏠린다. 대문자 고정 키. 저 녀석의 불빛이 켜져 있는 꼴을 나는 단 1초도 견디지 못한다.
한글을 쓰는 데 대문자가 무슨 상관이냐고?
모르는 소리. 저 불빛은 나에게 '오류'이자 '무질서'의 상징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수시로 그 키를 누른다.
삑. 삑. 삑.
소리가 나야 한다. 꺼졌는지 눈으로 확인하고도 못 미더워, 굳이 다시 켰다가(삑) 다시 끈다(삑). 그 청아한 비프음이 내 고막을 때리고, 키보드 구석의 불빛이 완벽하게 소멸된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만약 글을 쓰다 오타라도 나면? 나는 즉시 녀석부터 의심한다.
"네놈이 켜져 있어서 내 문장이 꼬인 거야."
(물론 아니다. 내 머리 문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나의 강박은 화면 우측 하단, '사운드 볼륨'으로 전이된다.
나는 글을 쓸 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노래도, 뉴스도, 백색 소음도 없는 완벽한 적막. 그게 내 작업 환경이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게, 나는 듣지도 않는 스피커의 볼륨을 수시로 조절한다.
마우스 커서를 가져간다. 볼륨 바를 클릭한다. 현재 볼륨 23. 불편하다. 숨이 턱 막힌다. 왜 하필 23인가. 20도 아니고 25도 아니고, 이 어정쩡한 소수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듣지도 않을 소리를 기어이 34로 맞춘다. 아무 소리도 안 나오는데 도대체 왜? 나도 모른다. 그냥 그 숫자가 거슬린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은 내 맘대로 비틀고 죽이고 살리면서, 정작 내 모니터 구석에 박힌 숫자 하나는 내 통제를 벗어나 있으면 안 된다는 이상한 아집.
누군가는 이걸 강박증이라 부르고,
의사는 결벽증의 일종이라 진단할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쓸모없는 '소설가의 디테일',
우리는 없는 세상을 짓는 사람들이다.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그 세계를 짓는 키보드와 환경부터 무결점 상태여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쓰면서도, 방금 또 Caps Lock 키를 두 번 눌렀다. 난 도라이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불빛을 끄고, 숫자를 맞추고, 줄을 세우는 신. 이 하찮은 의식을 치러야만, 거창한 문장을 쓸 용기가 생기는 나의 우주.
오늘도 나는 삑삑거린다.
이 소리가 멈추면,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