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뒤늦게 깨달은 '덜어냄'의 미학에 관하여
나는 원래 '설명충'이었다.
(고상하게 말하면 '친절한 작가'라고 우기고 싶지만.)
아버지가 크게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 소설 속 인물이 슬프면,
독자가 그 슬픔을 혹시라도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썼다.
"그는 미치도록 슬퍼 했다."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아 덧붙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부사와 형용사를 시멘트처럼 바르고 또 발랐다. 그래야 문장이 단단해진다고 믿었다. 내가 자가출판으로 펴낸 B5 600쪽짜리 '벽돌 책'은 그 강박과 불안이 빚어낸 비만(肥滿)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그 깨달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개정판을 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어떤 날이었을 것이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문장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빽빽하게 들어찬 활자들 사이에서 독자가 상상할 틈, 아니 독자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슬픔은 '미치도록 슬프다.'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는 밥을 삼키지 못했다."와 비슷한 방식으로 툭― 던지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덜어냄'의 미학. 말은 멋있지만, 작가에게 이건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이다. (과장인 것 같으시다면, 직접 써 보시라.) 밤을 새워 쓴 문단 하나를 통째로 날릴 때의 그 쓰라림. '이 표현은 진짜 기가 막힌데.' 싶어서 아껴둔 문장을, 전체 흐름을 위해 지워 버릴 때의 그 아까움. 마치 내 시간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기분이다.
하지만, 덜어내고 나면,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문장이 가벼워지는데, 힘은 더 세진다. 군더더기가 사라진 자리에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을 독자의 감정이 채운다.
나는 그동안 독자를 무시했던 것이다. 내가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를 거라고, 내비게이션처럼 친절하게 떠먹여 줘야 한다고 무시했던 것이다.
독자는 작가보다 똑똑하다.
그들은 행간(行間)을 읽고, 침묵을 듣는다.
이제 나도 조금은 안다. 아니, 알 것 같다.
그래서, 지운다.
쓰는 시간보다 지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내 글이 화려한 유화가 아니라,
선 몇 개로 본질만 남긴 수묵화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가장 아끼는 문장 하나를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