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관찰을 현미경처럼, 강단은 매스처럼.
저번 화에서 나는 '관찰'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찰한 것을 있는 그대로 몽땅 옮겨 적는다고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그건 소설이 아니라 '보고서'거나 'CCTV 녹화본'일뿐이다.
소설가는 CCTV가 아니라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현실의 너저분한 풍경을 몽땅 쓸어 담은 뒤, 가장 날카로운 단어 하나로 압축해 독자의 뇌리에 꽂아 넣어야 한다.
내 소설 『반반한 마을』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겠다. 주인공 '포'가 입을 다치고, 퓨티가 가져온 빵을 씹어 먹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쓰기 위해 내 머릿속 관찰 노트(혹은 상상력)는 이렇게 가동된다.
[관찰 및 상상 노트 - 빵을 먹는 포]
빵의 질감 : 거칠다. 수분이 없다. 싸구려 곡물 빵.
씹는 행위 : 포는 혀를 다쳐서 잘 씹지 못한다.
우적우적 씹는 게 아니라 억지로 뜯어낸다.
단면의 모양 : 칼로 썬 게 아니라,
이빨로 뜯어냈으니 지저분하다.
실오라기처럼 빵 부스러기가 일어났다.
감정 : 배는 고픈데, 딸이 고생해서 구해온
음식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다.
마치 짐승이 먹이를 뜯는 것 같다.
이 방대한 정보를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아마 초보 시절의 나였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설명) "포는 배가 고파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빵은 너무 거칠었고, 혀가 아파서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입에서 빵을 떼어내 보니, 이빨 자국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표면이 지저분하게 뜯겨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짐승이 억지로 뜯어먹은 것 같아서 포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
상황은 이해되지만, 지루하다.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작가가 다 말해버리니 독자가 느낄 몫이 없다. 그래서 나는 줄인다. 구구절절한 감정 설명은 다 버리고, 오로지 '시각적 이미지' 하나만 남긴다.
(개정) "포는 베어 물었던 빵을 입에서 떼어 내어 이빨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포는 생각했다.
「반듯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보풀이 올라온 것이, 꼭 짐승 떼가 밟고 지나간 것 같다고.」
확 줄어들었다. 하지만 힘은 더 세졌다.
'보풀이 올라온 빵 단면'을
'짐승 떼가 밟고 지나간 자리'라는
비유로써, 포의 처참한 심정과 마을의 거친 환경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독자는 '슬픔'을 읽지 않아도, 그 뭉개진 빵 조각에서 비릿한 슬픔을 느낄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볼까. 마을의 '사형대'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비가 오고, 나무로 된 사형대가 젖어가는 모습을 나는 이렇게 관찰했다.
[관찰 노트 - 비 오는 사형대]
빗물 :
흙바닥에 떨어졌다가 튀어서 기둥을 적신다.
냄새 :
비 냄새, 흙냄새,
그리고 오래된 피 냄새 같은 게 섞여 있다.
분위기 :
붉은색 기둥이 빗물을 빨아들이니까
더 검붉게 보인다.
마치 주변의 생명력을 다 빨아먹는 블랙홀 같다.
이걸 그대로 쓰면 풍경 묘사가 된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피 냄새'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지우고, '흡수'라는 이미지에 집중했다.
(개정) "땅을 적시는 빗물이 사형대의 다리로 스며들 듯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 땅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향취까지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검은 구멍과도 같은 곳이었다."
비가 내리면 땅에서 시원한 흙냄새가 올라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사형대는 그 생명의 냄새마저 '모조리 흡수' 해 버린다. 이 문장 하나로 사형대라는
공간이 가진 '죽음의 속성'이 완성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압축의 기술'이다.
관찰은 최대한 자세하게 하되, 표현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는 것. 현실의 정보를 몽땅 쓸어 담아온 뒤, 채에 걸러 보석 같은 비유 하나만 남기는 작업.
나는 이 과정을 이젠 즐길 줄 안다. 너저분한 현실을 정제된 문장으로 바꿀 때 느끼는 쾌감. 그 '손맛' 때문에 나는 오늘도 사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밤새워
Delete 키를 누른다. 그러니 누군가의 소설 속 한 문장을 읽을 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관찰과 수십 번의 삭제를 상상해 주시길 감히 바란다.
백조가 물 밑에서 발버둥 치듯, 작가도 문장 뒤에서 치열하게 지우개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