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에 관하여 2

5화 : 빅픽처

by 현영강

인생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나를 글쟁이로 만들었다.
21살, 재수생 시절.

[식물인간]을 끄적이던 때.
재능도, 미래도 불투명한 채,
그저 활자나 읽어대던 시절.

그때 이 책이 내게 왔다.
질문은 간단했다.

"이게 내 삶이 맞나?"

벤 브래드퍼드. 성공한 월스트리트 변호사. 완벽한 교외 주택. 지긋지긋한 아내. 훌륭한 굴레다. 그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의 안락함에 타협했다. 그는 썩어가고 있었다.

[조향사]의 서정화가 그랬듯,
[세 굴레 출판사]의 미생이 그랬듯,
생을 그저 견디고 있었다.

방아쇠는 아내의 불륜이었다. 우발적 살인.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수하거나, 공황에 빠졌겠지. 하지만 벤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시체를 만들고, 타인의 신분을 훔친다. 도망이 아니다.

완벽한 '교환'이다.
그는 그토록 원하던 사진작가가 되어,
이름 없는 시골에서 성공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리셋됐다.

해피엔딩?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런 달콤한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굴레는 벗어나는 게 아니다. 갈아 끼우는 것뿐이다.
과거는 유령처럼 반드시 찾아온다.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과거는 어김없이 문을 두드린다.

그가 훔친 삶이 그의 발목을 잡는 순간,

독자인 나는 안도했다.

그래, 역시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그래서 지독하게 공평하다.

이 책은 내게 물었다.

"너는 네 삶을 불태울 용기가 있나?"

당시의 나는 대답했다.

"어."

나는 벤처럼 살인을 저지를 배짱은 없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텐가?"

나는 벤이 타인의 '신분'을 훔쳤다면,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훔치기로,

아니, 만들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완벽한 생을 파괴하고,
기어이 새로운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린

지독한 보고서다.

나는 이 보고서를 읽고,
나의 보고서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게 다다.



뭔가 쓰고 보니 동일저자의 위험한 관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