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반반한 마을 개정판
회색 구름만큼이나 내리는 비가 희게 보이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쥐고 있는 것들은 제각각이었다. 비는 누군가에게는 더욱 내렸고, 누군가에게는 덜 내렸다. 아무튼, 모두가 젖어 있었다. 큼지막한 깃대를 든 사내는 몸이 무척이나 단단했다. 그리고 양옆에서 그를 받치듯 버티고 서 있는 두 여인은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의 손수건을 손에 쥐고 있었다. 사내가 깃대를 들고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자, 파란색 손수건을 든 여인이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흙이 가득한 땅이 물을 머금어 몹시 질퍽거렸다. 빨간색 손수건을 쥔 여인 앞으로 두 명이 몸을 풀었다. 빨간색 손수건이 아래로 내려가고, 푸른색 손수건이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경주가 시작되었다.
CHAPTER 1
: 퓨티와 포의 마을 입성
단상에 올라선 피크가 소리쳤다.
“약속의 날입니다!”
피크가 말을 시작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도망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도망자가 아닙니다!!”
큰 목소리로 말한 피크는 확성기에서 입을 떼, 목소리를 가다듬는 시늉을 몇 차례 보이고는 이어 말했다.
“오늘로 스물아홉, 그곳에서 벗어난 우리가 이 마을을 건립하고 오늘로써 스물아홉 번째 약속을 이행하게 되는 날입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우리가 아사한 존재가 되었습니까?!”
피크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예상대로 우리가 버티지 못하였습니까?!”
단상 아래의 사람들이 또 한 번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피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소리가 그치자, 말을 이었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약탈, 살인, 분쟁, 그 모두를 방임하는 어리석은 우두머리!! 그 모두를 수긍하고 사는 어리석은 인간들!! 우리를 깔보던 그들 모두는 멍청한 역사를 여전히 되풀이하며 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피크는 오른팔을 길게 뻗어 단상 계단 쪽을 가리켰다. 도살장에서 갓 뛰쳐나온 듯한 푸짐한 남자와 머리에서 발까지를 합하여도 그의 다리 하나 크기가 채 안 되는 꼬마 숙녀.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니, 남자가 아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손을 뻗은 피크가 말했다.
“저들의 참상이 보이십니까! 빛이 사라진 안색이 보이십니까!”
피크는 집게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찔러, 삐져나온 거짓의 눈물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그를 본 아래의 사람들은 동조의 소리를 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과거의 우리인 채로!! 저 역시 저러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저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크는 단상 계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를 본 남자는 덤덤한, 혹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계획한 듯한 표정을 내비쳤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아이는 흰색 바탕에 남색 무늬가 섞인 땡땡이 드레스와 빨간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남자와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아이는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를 따라 움직였다. 아이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무관심도 냉정함도 아닌, 단순하지만 엉켜 있는 듯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일곱도 안 돼 보이는 아이의 갑작스럽고도 어른스러운 등장에 북돋아 줄 준비를 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피크를 지나쳐 단상 앞쪽으로 나아갔다. 자신을 위해 마련된 소형 확성기도 아이는 무심히 비켜나 갔다. 분위기를 단숨에 주저앉히는 고역이라기보단, 서서히 아려 오는 서늘함에 가까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녀의 첫마디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녀의 모습에 누군가는 경탄을, 누군가는 눈총을, 누군가는 연민을 꺼내 들었다.
“저는 퓨티라고 해요. 저기 있는 사람은 저의 아빠, 포. 아빠는 입을 다쳐서 말을 못 해요. 그래서 제가 대신해서 말을 해야 해요. 말하는 법은 엄마가 가르쳐 줬어요. 근데 엄마는 같이 오지 못했어요. 동그란 빛이 엄마를 비추려 할 때 제가 소리를 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로부터 10년,」
퓨티는 이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둘은 도망자, 그리고 반역자였다. 둘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모두가 그랬다. 그들이 도망쳐 나온 곳은 시티라고 불렸다. 퓨티는 그 단어가 과거에는 도심을 부르는 단순한 명칭이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무의식이 건네주는 그 순간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뒤따라 느껴지는 기름 냄새에 퓨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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