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라는 비겁한 방패

7화 : 왕복 600km의 여독은 핑계가 될 수 없다

by 현영강

코가 막힌다. 목구멍이 따갑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전형적인 감기 몸살이다. 침대 맡에는 코를 푼 휴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나는 전기장판 위에서 송장처럼 누워 있다. ​합리화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아, 대구에서 마포까지 왕복 600km를 다녀왔잖아. 무리했지. 이건 훈장 같은 거야. 좀 쉬어도 돼."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급한다.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리며 생각한다. 오늘은 글이고 뭐고 그냥 넷플릭스나 보다가 자야지. 아프니까 청춘은 개뿔, 아프니까 휴업이다. ​그런데,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기분이 더럽다. 몸이 아픈 것과는 별개로, 속이 메스껍다. 이 메스꺼움의 정체는 명확하다.


'비겁함'이다.


​나는 지금 아픈 것을 핑계로 '나태'를 즐기고 있다. 솔직해지자. 손가락이 부러졌나? 아니다. 눈이 멀었나? 아니다. 단지, 컨디션이 좀 저조할 뿐이다.


​만약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감기 좀 걸렸다고, 어제 서울 출장 다녀왔다고 "부장님, 저 오늘 쉽니다." 하고 무단 결근을 할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 쌍화탕 하나 때려 붓고, 마스크 쓰고, 출근해서, 콧물 훌쩍거리며 엑셀을 두드렸겠지.


편의점 사장님이라면?


고열이 나도 문을 열었겠지. ​그런데 나는 '작가'라는, '예술'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서 너무나 쉽게 셔터를 내리려 한다.


"예술가는 영감이 중요하고,

컨디션 관리가 생명이니까."


웃기지 마라. 그건 대문호들이나 하는 소리고, 나 같은 생계형 글쟁이에게 글쓰기는 숭고한 창작 활동 이전에 '노동'이다. ​며칠 전, 소설가협회 정기총회 단상에 올라가서 뭐라고 지껄였더라.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습니다."


그렇게 비장하게 말해놓고, 고작 바이러스 몇 마리가 침투했다고 파업을 선언해? 죽을 때까지 쓰겠다며. 지금 죽어가고 있나? 아니지 않나. ​왕복 600km.


그래, 멀다. 힘들다.


하지만, 그건 그냥 KTX가 달린 거지 내가 달린 게 아니다. 나는 앉아서 왔잖아. 그게 벼슬인가? 그게 오늘 타이핑을 펑크 낼 면죄부가 되나?세상은 냉정하다. 독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관절이 삐걱대고 머리가 핑 돈다.
책상 앞에 앉는다. 모니터의 흰 화면이 나를 째려본다.


"그래서, 안 쓸 거야?"


​쓴다. 써야지. 열이 나면 열이 나는 대로, 콧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그 몽롱한 정신으로 쓴 글이 비록 쓰레기 같을지라도,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쓰레기는 고쳐 쓸 수 있지만,

백지는 고칠 수도 없으니까.


​약을 털어 넣는다.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는 작가다.


아파서 징징거리는 건 일기장에나 쓰고,
프로의 문장을 남겨야 한다.
​감기는 감기고, 일은 일이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자, 핑계는 끝났다.
타자를 쳐라, 현영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