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거짓을 삼키다.

11화 : 낙원이라 믿었던 지옥

by 현영강


가끔 소설의 문장으로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너무 날카로워서, 혹은 너무 거대해서


산문(散文)의 그릇에 담으면 넘쳐버리는 것들.

그럴 때 나는 시를 쓴다. 은유 뒤에 숨지 않으면,


그 적나라한 현실을

맨정신으로 마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 내 소설 『반반한 마을』을 관통하는 하나의 시가 있다. 이것은 가상의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이 거대한 '거짓된 낙원'에 대한 고발장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도망친다.
'시티'라고 불리는 저 숨 막히는 경쟁,

자본의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가 싫어서.


조금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 평화가 있는 곳,

소위 '워라밸'이 보장된 낙원을 찾아 헤맨다.

소설 속 인물들이 찾아든 '마을'도 그런 곳이었다. 폭포 뒤에 숨겨진, 세상의 비를 피할 수 있는 아늑한 도피처.
그러나,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그곳은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습기 찬 곰팡이 굴일뿐이다. ​마을의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지금의 우리네 사회를 닮았다. 단상 위에서 침을 튀기며 정의를 외치는 지도자들의 목소리는 깡통처럼 공허하다. 스스로 깨어있다 자부하는 지식인들을 보라.


그들이 애지중지 가꾸는 화분에 담긴 것은 생명을 키우는 물이 아니라, 썩은내 진동하는 '위선'이다. 그 위선을 먹고 자란 꽃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밤이 되면 촌극은 절정에 달한다. 낮에는 점잖은 척하던 인간들이, 어둠이 내리면 영웅의 탈을 쓰고 담을 넘는다.


대단한 혁명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았더니, 기껏해야 남의 집 창고에서 통조림이나 훔쳐 오는 생쥐 꼴이라니. 이 얼마나 찌질하고도 리얼한 인간 군상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았나. 안전하다고, 평등하다고,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 달콤한 사탕들.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보던 색안경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 온다.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그토록 허겁지겁 씹어 삼켰던 건,

'자유'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먹다 버린, 곰팡이 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그 상한 것을 삼켰으니,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반반(半半)


반은 선이고 반은 악일 거라 믿었던 세상.
반은 희망이고 반은 절망일 거라 타협했던 세상.

가면이 벗겨진 광장에 나뒹구는 얼굴들을 보며 나는 묻는다. ​우리네 사회는 반반한 마을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벽한 지옥이지 않았을까.




​당신이 지금 안락하다고 느끼는

그 의자 밑을 살펴보라.

혹시 유통기한 지난 거짓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