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24화 :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한 것

by 현영강

물을 따를 때는 천천히 부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물리 법칙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주전자를 확 기울이면

물줄기는 컵의 바닥을 때리고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식탁은 흥건해지고, 컵은 수압을 이기지 못해 덜그럭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결국 내 입으로 들어가는 물보다 바닥에 버려지는 물이 더 많아지는, 흔한 참사.


나는 젖은 테이블을 휴지로 닦으며 생각한다.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나는 늘 조절 실패자였다. 무언가를 할 때, 나는 그가 혹은 그것이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내 밸브를 최대로 열어젖혔다.


노력이든, 열정이든, 혹은 불안이든.


나는 내 안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 그것을 빨리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 상대라는 작은 컵에 폭포수처럼 쏟아부었다. ​결과는 늘 뻔하다.


그는 그 거센 물살에 질려 뒷걸음질 치거나,

넘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깨져버다.

나는 낭자한 물웅덩이 위에서 억울해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주었는데, 그는 혹은 그것은,

왜, 고마워하기는커녕 부담스러워할까.


​그건 헌신이 아니 때문이다.
그건 수압(水壓)을 이용한 폭력이 때문이다.


​컵에게는 받아낼 수 있는 용량뿐만 아니라,

받아낼 수 있는 '속도'라는 게 존재한다.


표면장력이 작용할 시간을 주고,

물이 바닥에서부터 차오를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콸콸 들이붓는 행위는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의 해소일 뿐이다. ​비단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다.


'성취'도 마찬가지다.


빨리 채우고 싶어서

엑셀을 밟아대면 차체는 반드시 흔들린다.


엔진은 과열되고,

시야는 좁아지고,

결국, 어딘가에 처박히게 되어 있다.


지금 사람이 겪는 모든 불안과 어지러움도, 그릇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채우려 했기 때문에 생긴 멀미일지도 모른다.


​물을 따르는 일. 고고하다.

그 사소한 행위에서 나는 인간의 예의를 배운다.


기울기를 조절하는 손목의 힘, 물줄기를 끊어지지 않게 잇는 집중력, 그리고 컵의 수위를 지켜보는 눈.


그 섬세한 통제만이 식탁을 더럽히지 않고,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는 샹각한다.

천천히, 천천히.
아무리 목이 말라도,

아무리 가지고 싶은 게 많아도.

한 방울씩, 또 한 방울씩.
스며들자.




​컵이 놀라지 않게,
사랑이 넘쳐서 비운이 되지 않게,
그렇게 고요하게, 또,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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