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사슬을 끊을 수 없을지도
부모는 자식에게 무언가를 물려준다.
누군가는 강남의 빌딩을 물려주고,
누군가는 우량주를 물려준다.
나의 부모는 내게 '성실한 가난'을 물려주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미련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새벽별을 보고 나가, 달이 뜰 때 들어오는 삶. 그러나 그들의 성실함은 가난을 벗어나는 사다리가 되지 못했다. 그저 가난을 견디는 진통제였을뿐.
아버지는 한때 마도로스였다.
망망대해를 누비며 태평양의 파도를 넘던 사내였다.
하지만, 배에서 내린 그는 육지에서 길을 잃었다.
바다는 그에게 호기로움을 주었지만,
육지는 그에게 굴종을 요구했다.
그는 닻 대신 삽을 잡았다.
배의 키를 잡던 손으로
벽돌을 날랐고,
시멘트를 비볐다.
평생을 막노동판에서 뼈를 갈아 넣었지만,
그의 통장은 늘 밑 빠진 독이었다.
그의 몸에 남은 건 훈장이 아니라 골병뿐이었다.
어머니는 공인중개사다.
2003년, 그 어려운 자격증을 따냈을 때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자격증만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중개하러 다녔지만, 정작 본인의 집은 없었다.
남의 재산을 불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본인의 지갑은 늘 얇았다.
계약을 하지 못하는 공인중개사. 텅 빈 사무실을 지키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그 뒷모습은, 거친 공사판에서 땀 흘리는 아버지의 등만큼이나 쓸쓸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가난은 DNA처럼 내게 각인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사실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마저 진화시켰다. 꿈조차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그 비루한 본능. 잔인한 일이다.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저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조금 가라앉았을 뿐인데, 그 수압(水壓)은 자식의 폐부까지 짓누른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그것도 이자까지 쳐서, 더 지독하고 끈질기게.
나는 이 연쇄를 끊고 싶다.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 녹슨 쇠사슬을 내 대에서 잘라내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기어이 '노벨문학상'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이유는 명예욕 때문이 아니다. 이 지긋지긋한 중력에서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비상구가 내게는 문학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삽자루로는 끊지 못했다.
어머니의 계약서로는 끊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펜으로 끊어야 한다.
이것은 감성팔이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 보고서다.
나는 가난했던 나의 부모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들의 가난까지 사랑할 순 없다.
나는 도망칠 것이다.
이 질척거리는 늪에서,
가장 우아하고 날카로운 문장을 밟고서,
기어이 저 높은 곳으로.
나의 자식에게는 이 눅눅한 가난의 냄새가 아니라,
가난을 이겨낸 자의 향기를 물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