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급변하는 시대, 멸종 위기종의 생존법
시대가 변한 게 아니다. 시대는 미쳐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3줄 이상의 글을 읽지 않는다.
1분짜리 쇼츠가 세상을 지배하고, 10초 안에 도파민을 터뜨리지 못하면 가차 없이 손가락으로 밀려나는 세상.
활자는 지루하고, 영상은 짜릿하다.
그뿐인가.
이제는 기계가 소설을 쓴다.
나보다 맞춤법이 완벽하고, 나보다 방대한 지식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나처럼 카페인이나 신경안정제를 처먹지 않아도 지치지 않는 괴물들.
그 압도적인 효율성 앞에서, 타닥타닥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는 나는 구석기시대의 돌도끼 장인처럼 초라해 보인다.
느낌이 온다.
나는 지금 막차를 탔다.
'문학'이라거나,
'글쓰기'라는 이름의, 낡고 녹슨 증기기관차.
창밖으로는 KTX보다 빠른 신문물들이 쌩쌩 지나가는데, 내가 탄 이 기차는 덜컹거리며 매연만 뿜어대고 있다. 승객들은 하나둘 내리고, 칸은 비어가고, 종착역은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환승해야 할까. 유튜버가 되어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거나, AI에게 명령어를 입력하는 오퍼레이터가 되어야 할까.
아니.
나는 그냥 이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다.
이 덜컹거리는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딱 하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해 '슬픔'을 묘사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슬퍼할 수는 없다. 놈들은 돈이 없어서 아버지에게 '야,,, 같이 X자.'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서늘한 모멸감을 모른다.
약을 삼켜야만 잠들 수 있는 공포를 모른다. 가난이 뼈에 사무쳐 벌벌 떠는 그 지질한 감각을, 놈들은 영원히 학습할 수 없다.
예술은 본래 매끈한 것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것이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어딘가 깨지고 부서진 틈새에서 피 냄새가 날 때 독자는 반응한다.
"나도 아픈데, 너도 아프구나."
그 비참한 연대감이야말로 인간 작가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느린 것을 그리워할 것이다.
매끈한 디지털 세상에 지칠수록, 거칠고 투박한 아날로그의 질감을 찾게 될 것이다.
모두가 엑셀을 밟을 때,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을 하려 한다.
세상이 1초 만에 답을 내놓을 때, 나는 밤새 고민하며 한 문장을 적겠다. 세상이 화려한 편집으로 눈을 속일 때, 나는 벌거벗은 문장으로 진실을 찌르겠다.
이것은 도태가 아니라 저항이다.
속도에 대한 저항이자,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나는 이 막차의 마지막 승객이 되겠다.
기관사가 내리라고 할 때까지, 아니 기차가 멈춰 설 때까지.
나는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들을 기록할 것이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나의 불행을, 나의 이 결핍을, 나의 이 지독한 인간성을 무기 삼아.
그러니 글쟁이들, 나를 포함한,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바퀴벌레처럼 징그럽게,
그리고 잡초처럼 끈질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