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에 올라탄 활자 중독자 2

27화 : 노동꾼인가

by 현영강

글을 쓴다는 것.

누군가에게 저 소설가예요.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고상한 정신 활동이라고 착각한다.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응시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피아노를 치듯 가볍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장면을 상상한다.


​웃기는 소리다.

내가 아는 글쓰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육체노동이자, 뼈를 깎는 막노동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 평생을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비비던 사내. 그의 손은 굳은살로 뒤덮여 지문조차 희미했고, 그의 허리는 중력을 이기지 못해 굽어 있었다. 아버지는 땀으로 건물을 올렸고,


나는 엉덩이로 문장을 올린다.

도구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일. 무(無)의 허허벌판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어 하나의 세계를 축조하는 일. ​요즘 세상은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AI는 1초 만에 소설 한 편을 뚝딱 뱉어내고, 알고리즘은 내가 뭘 좋아할지 미리 계산해서 눈앞에 대령한다. 이 미친 효율성의 시대에, 나는 밤새도록 단어 하나와 씨름한다.


'슬픔'이라고 쓸지, '비참함'이라고 쓸지, 아니면 '먹먹함'이라고 쓸지.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고 담배를 태우고,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는다. ​누가 보면 미련한 짓이다.


남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가는데, 나는 계단 하나하나에 벽돌을 깔며 기어 올라가는 꼴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결과물은 투박하며, 보상은 짜다. 일당으로 치면 최저 시급도 안 나오는 이 짓거리를, 나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그것은 '지문(指紋)' 때문이다.
​기계가 지은 매끈한 빌딩에는 사람의 냄새가 없다.
너무 완벽해서 차갑고, 너무 정교해서 소름 끼친다.


하지만, 내가 밤새 끙끙대며 쌓아 올린 삐뚤빼뚤한 소설의 벽돌에는 나의 지문이 묻어 있다. 나의 고민, 나의 고통, 나의 한숨, 그리고 나의 체온이 그 투박한 틈새마다 끼어 있다.


​독자들은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본다.
매끈한 챗GPT의 문장보다, 다소 거칠더라도 피 냄새가 나는 인간의 문장에 반응한다.


"이 사람, 진짜로 아파봤구나."
"이 작가, 진짜로 바닥을 쳐 봤구나."


그 공감의 순간은 효율성 따위로 환산할 수 없는 기적이다. ​나는 디지털 시대의 막노동꾼이다.

모두가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나는 묵묵히 활자의 벽돌을 나른다.


오늘도 내 허리는 뻐근하고, 손목은 시큰거리고, 눈은 침침하다. 아버지의 몸이 골병들었듯, 내 영혼도 서서히 닳아가고 있다.


​나는 이 고단함이 싫지 않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쉽게 쓰인 글은 쉽게 잊히지만, 앓으면서 쓴 글은

누군가의 가슴에 흉터처럼 남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삽질을 한다.


이 비효율적이고, 느려터지고, 돈도 안 되는 노동의 현장에서. 가장 정직하게, 가장 무식하게.


​언젠가 내가 쌓은 이 문장의 집들이 누군가에게는 비를 피할 처마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쉴 의자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나의 공수(工數)를 채우러 간다.

​자판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부모님의 이마에 맺혔던 그 땀방울과 닮아 있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