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를 찾아라

11화 : 뇌의 주파수를 맞춘다는 건

by 현영강

적막은 소음보다 시끄럽다.
고요함은 독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 내 귓가에는 세상의 온갖 잡음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밀린 카드값의 독촉, 미래에 대한 불안, 망작을 쓸지도 모른다는 공포, 타인의 비웃음. 그 소음들이 데시벨을 높여 나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글은커녕 숨조차 쉬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튼다.



이것은 감상이 아니다. 방어기제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 내부의 소음마저 덮어버리기 위한 백색 소음의 벽을 세우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뇌파를 조작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쓴다는 건, 현실의 시간에서 이탈해 허구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그 차원 이동을 위해서는 강력한 촉매제가 필요하다. 맨정신으로, 아무런 리듬도 없이 그 세계로 진입하려면 뇌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라.
장르?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클래식을 들으면 고상한 글이 나오고, 힙합을 들으면 저급한 글이 나온다는 편견을 버려라. 중요한 건 그 음악이 당신의 심박수와 동기화되느냐다.



​나는 잡식성이다.



전투 장면을 쓸 때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헤비메탈을 듣는다.



드럼 비트가 내 심장을 가격할 때, 비로소 내 문장에도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속도감이 실린다.



반대로 이별 장면이나 내면의 독백을 쓸 때는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나 빗소리를 듣는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위험하다.



타인의 언어가 내 뇌로 침투해 내가 써야 할 문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낯선 언어의 팝송이나, 목소리가 악기처럼 쓰이는 몽환적인 곡을 선호한다. ​음악은 훌륭한 페이스메이커다.



마라톤 선수가 옆에서 뛰는 사람의 호흡에 맞춰 달리듯, 작가는 음악의 템포에 맞춰 타자를 친다.
음악이 빨라지면 문장도 짧고 간결해지고, 음악이 느려지면 문장도 길고 호흡이 깊어진다.



당신이 쓰고 있는 장면의 분위기와 딱 맞는 음악을 찾았을 때, 글은 노동이 아니라 춤이 된다. 손가락이 저절로 건반 위를 춤추듯 움직이는 그 물아일체의 순간. 그 희열을 맛본 사람은 결코 침묵 속에서 글을 쓰지 못한다. ​때로는 한 곡만 주구장창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일종의 최면 요법이다. 같은 멜로디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면 뇌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배고픔도 잊고, 오직 모니터 속의 세계만이 리얼리티를 갖게 되는 상태.
그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내 고막을 혹사시킨다.




​당신에게 맞는 노동요를 찾아라.
남들이 좋다는 클래식 컬렉션 따위는 집어치워라.
뽕짝이든, 테크노든, 불경 외는 소리든 상관없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고,

당신을 책상 앞에 앉혀두는 그 소리가 바로 정답이다.



​글이 안 써지는가?



그건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신의 공간에 흐르는 공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공기를 바꿔라.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라.



음악이 흐르는 순간, 당신의 좁은 방구석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비 내리는 재즈바가 되기도 한다.



​그 분위기에 취해라.
취해야 쓴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자유 노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니까.



​이어폰을 꽂아라.
이제 세상의 소리는 지우고,

당신만의 리듬을 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