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불타는 병, 화병

3화 : 수족번열, 학업보다 시급했던 진화 작업.

by 현영강

초등학교 6년 동안 전학만 세 번을 다녔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짐을 쌌고, 적응할 만하면 낯선 교실에 던져졌다. 나에게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매번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었다.



당연히 적응은 실패했다. 나는 늘 교실 구석에서 겉도는 이방인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모의 치맛바람이 불어닥쳤다. 아버지의 부재를 공부로 채우려 했던 걸까.



갑자기 나를 영재로 만들겠다는 듯 문제집을 들이밀고 학원을 뺑뺑이 돌렸다. 나는 숨이 막혔다. 마음이 병들면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고 했던가. 그때 찾아온 것이 '수족번열(手足煩熱)'이었다.



수족냉증의 반대말이다. 손과 발이 차가운 게 아니라, 뜨겁게 타들어 가는 증상. 체온계를 재보면 정상인데, 내 감각으로는 손발을 용광로에 집어넣은 것만 같았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가짜 열(虛熱)'이라고 했다. 몸의 진액이 말라 생기는, 화병의 일종이라고.



공부? 웃기지 말라고 해라. 연필을 쥐면 손바닥에서 불이 났다. 발바닥이 뜨거워 책상 아래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수학 문제를 풀 때, 나는 책상과 의자의 쇠붙이를 찾아 더듬거렸다. 그 차가운 금속에 손바닥을 대고, 발바닥을 비벼야만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쇠의 냉기가 내 살의 열기를 식혀줄 때까지, 나는 공부가 아니라 진화(鎭火) 작업을 해야 했다.



선생님은 가정환경을 문제 삼았지만, 억울했다.

당신들이라면 손발이 불타는 채로 미적분을 풀 수 있겠는가. 책상이 아니라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싶어 미치겠는데, 영어 단어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명절이 되면 나는 기차를 타야 했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그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가기 싫다고 떼를 쓸 수도 없었다. 어른들의 사정은 아이의 고통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었으니까.



덜컹거리는 기차 안. 나는 혼자 창가에 기대어 울었다. 손발은 뜨거워 미치겠는데,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시려웠다. 내 몸의 열기는 아마도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분노였을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불안,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외로움이 내 손발 끝으로 몰려가 불을 질렀던 것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뜨거움은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내가 안착할 곳이 없는 한, 나는 평생 이 가짜 열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교과서 대신 차가운 쇠기둥을 붙잡아야 했던 시절. 그때 내 손바닥에 남은 건 굳은살이 아니라 화상 자국이었다.



보이지 않는 불에 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흉터.






나는 지금도 가끔 책상 다리를 만진다. 그때의 그 서늘함이,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던 온도였으니까. 지금은 나았습니다. 귀인을 만났거든요.



하지만, 종종 그 뜨거움이 저를 지배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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