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죽으란 법은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자율형 사립고에 다녔었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에게는 내 몸 자체가 지옥이었다. 수족번열은 극에 달했다.
손발이 뜨거워 잠을 잘 수 없었고,
한겨울에도 양말을 벗고 얼음팩을 찾아야 했다.
몸 안의 엔진이 터질 듯이 과열되어 있는데,
냉각수가 바닥난 자동차. 그게 딱 내 꼴이었다.
살고 싶어서, 아니, 덜 뜨겁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 동네의 한 한의원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신경성이다", "예민해서 그렇다"라는 무책임한 말만
들어온 터였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달랐다. 내 맥을 짚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기계로 자율신경 검사를 한 뒤, 모니터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그러나 충격적인 선고를 내렸다.
"학생, 지금 교감신경 수치가 일반인의 4배야."
4배.
남들이 시속 100km로 달릴 때, 나는 시속 400km로 폭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몸은 전력 질주를 하는 상태라고. 이러니 손발에서 열이 나고, 밤에 잠을 못 자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20대에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그날부터 나의 긴 치료가 시작되었다. 꼬박 2년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야간 자율학습 대신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매일 침을 맞았다.
머리에, 손에, 발에 꽂히는 그 따끔한 바늘들이 내 폭주하는 신경을 하나하나 눌러주는 브레이크 같았다.
쓰디쓴 한약을 밥처럼 먹었고,
동시에 정신과 치료도 병행했다.
동양의 침과 서양의 알약이 내 몸 안에서 처절한 연합 작전을 펼쳤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명현 반응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고,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돈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치료비를 깎아주기도 했고, 진료 시간이 끝났는데도 내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라,
불타는 건물에 뛰어든 소방관이었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비로소
내 몸의 심각성을 직시했다.
나는 남들처럼 살 수 없는 몸이었다.
그리고, 알바.
남들이 용돈 벌이로 하는
그 육체노동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4배나 예민한 신경을 가진 내가 몸까지 혹사하면,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하던 카페 알바를 그만뒀다.
그리고 펜을 잡았다. 몸을 쓰지 않고, 오직 뇌와
손가락만으로 할 수 있는 노동.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이 불타는 에너지를 배설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글쓰기였다.
어쩌면 도박,
당장 생활비가 급한데 알바를 관두고 소설을 쓰겠다니.
모두가 혀를 찼다.
나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았다.
네가 뭔데, 글을 써?
전공이나 했고?
가족들의 말이 더 아팠다. 특히, 친가.
육체의 불을 끄기 위해 한의원을 다녔다면,
영혼의 불을 끄기 위해 나는 글을 써야 했다.
2년 뒤, 거짓말처럼 손발의 열이 내렸다.
완치는 아니다. 여전히 나는 교감신경 항진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적어도 이제는 얼음팩 없이 잠들 수 있다. 책상의 쇠붙이에 손을 비비지 않고도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다. 그때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어디선가 과열된 엔진을 식히지 못해 폐차되었거나, 정신줄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가 내 몸의 불을 꺼주었기에, 나는 그 재 속에서 다시 타오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고통의 불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열정의 불로.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생명의 은인. 그 선생님께 이 글을 바친다.
당신이 살려낸 이 보잘것없는 환자가,
이제는 누군가를 살리는 글을 쓰고 있다고.
고맙습니다, 권 선생님.
선생님과 저는 여전히 좋은 인연으로 남아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