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감옥에서 핀 꽃

6화 : 나의 처녀작, 식물인간.

by 현영강


나에게 기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거대한 쇠몽둥이였다. 어린 시절, 부모의 고함과 나의 울음이 뒤섞여 진동하던 그 좁은 좌석.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은 도망치고 싶은 내 마음의 속도와 같았고, 규칙적인 덜컹거림은 불안한 내 심장 박동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나는 다시 그 기차에 올랐다. 대구와 부산을 오가는 무궁화호. 가장 끔찍했던 그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번째 집필실이 되었다. ​노트북 하나를 무릎에 올려놓고 덜컹거리는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예전 같았으면 귀를 막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펜을 든 나는 달랐다.
상처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 트라우마를 옆자리에 앉히고,

벗 삼아 말을 걸었다.


"야, 그때 너 진짜 아팠지?

한번 털어놔 봐. 내가 다 받아적어 줄게."


​그렇게 쓴 소설이 바로 [식물인간]이다.


​제목부터가 나다. 손발이 묶인 채, 의식만 살아서 펄떡거리는 존재. 몸은 기차라는 좁은 좌석에, 혹은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머릿속에서만큼은 우주를 유영하고 싶었던 나의 갈망.


그것을 소설 속 인물에게 투영했다.
​쓰는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용은 어둡고 처절한데, 타자를 치는 내 손가락은 왈츠를 추듯 경쾌했다. 그것은 창작의 고통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 고여 있던 고름을 짜내는 시원함이었다. 문장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내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하나씩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치유되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 내 영혼의 결핍이, 한글 파일 속에서 비로소 숨통을 틔웠다.주인공을 굴리고, 아프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 살아만 있으면 돼. 식물처럼 가만히 있어도, 뿌리만 내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꽃을 피워."


​이 소설은 정식 출판 루트를 밟지 못했다.
아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부크크(Bookk)'라는 자가 출판 플랫폼이었다.


편집도, 표지도, 교정도 내가 직접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피 묻은 붕대 같은 내 첫 문장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식물인간]. 정식 출간은 한참 뒤인 작년(2025년) 1월에야 이루어졌지만, 내 마음속에서 이 책은 영원한 나의 1번 타자다.


가장 서툴고, 가장 촌스럽지만,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기록. ​지금도 가끔 이 책을 펼쳐본다. 거기에는 기차 소리가 들린다. 덜컹, 덜컹. 그 소리는 이제 나를 공격하는 소음이 아니다.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배경음악이다.


​아픈 손가락.


너무 아파서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게 쓰다듬게 되는 내 첫 번째 분신. ​나는 이 책으로 비로소 식물인간에서 벗어났다.




뿌리를 뽑고, 두 다리로 서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