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00원짜리 흉기

7화 : 그해 겨울, 나는 행복한 병신이었다.

by 현영강

2023년 12월 18일. 내 인생의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반반한 마을].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출판 방식은 '부크크'를 통한 자가 출판.





여기까지만 들으면 낭만적인 데뷔 스토리 같겠지만, 실상은 코미디였다. 배송된 실물 책을 받아든 순간 나는 경악했다. (사실 당시엔 별 생각없었다.)

이건 책이 아니라 벽돌이었다. 아니, 누군가의 뒤통수를 후려치면 뇌진탕을 일으킬 법한 흉기였다.



페이지 수는 무식하게 두꺼웠고, 그 두께만큼 가격도 살벌했다. 정가 32,300원. 신인 작가의, 검증되지 않은, 게다가 자가 출판으로 나온 소설책 한 권이 3만 원이 넘는다니. 서점에 깔린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책도 1만 5천 원 내외인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저 가격을 책정했을까. (책정은 부크크가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몰랐으니까. 시장 논리도, 독자의 구매 심리도, 출판 마케팅도 전혀 모르는 무식한 초짜였으니까. 나는 그저 내가 쓴 글을 한 글자도 빼기 싫었고, 분권을 하면 내 거대한 서사가 끊길까 봐 멍청하게 한 권으로 묶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그때의 내 표정이다. 그 무식한 벽돌을 손에 들고 나는 실실거렸다. 입이 귀에 걸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 그때 알았다. 남들이 보면 "저걸 누가 사?"라고 비웃을 물건을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나 작가 됐어. 내 책 나왔어."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건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아니라, 철없는 어린아이의 객기였다.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는, 오로지 "나 이렇게 많이 썼어요."라고 과시하고 싶은 욕망 덩어리.



그 32,300원이라는 가격표는

나의 오만함과 무지의 결정체였다.



당연히 판매량은 처참했다. 지인들이 의리로 사준 몇 권을 제외하면, 그 비싼 벽돌을 낯선 독자가 집어 들 리 만무했다. 첫 인세 정산서에 찍힌 숫자는 귀여웠다. 돈백도 안 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 현실은 이런 거구나. 글만 쓴다고 작가가 아니구나.

누군가 읽어줘야, 누군가 지갑을 열어줘야 비로소 작가인 거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나는 그 흉기 같던 [반반한 마을]을 수술대 위에 올렸다. 살을 쳐내고, 뼈를 맞추고, 독자가 읽기 편하게 다듬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무식하게 한 권이었던 분량을 3권으로 분할했다.



이제야 좀 책 같은 모양새가 갖춰졌다.



다행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출판사와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조만간 이 못난 자식을 제대로 된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3만 원짜리 벽돌을 파는 바보가 아니다. 시장을 알고, 독자를 알고, 팔리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프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립다. 판매량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인세가 얼마인지 계산도 안 하고, 그저 내 이름 박힌 종이 뭉치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던 그해 겨울의 내가.




비록 병신 같았지만, 그만큼 순수했고, 그만큼 뜨거웠던 그때 그시절, 다시는 오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