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그 지루한 늪
멀쩡하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기계적인 결함은 없다.
그런데 내 몸은 왜 이럴까.
아침에 눈을 뜨면 개운함 대신
납덩이 같은 중력이 나를 짓누른다.
만성피로 + 항진
이건 병명도 없는 고문이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면 핑계라도 댈 텐데, 겉보기엔 멀쩡하니 꾀병 취급받기 딱 좋다.
네 번째 소설 [조향사]를 막 시작할 때,
내 작업실은 수면실이나 다름없었다.
모니터 속 커서는 깜빡거리는데,
내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머릿속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향기를 다루는 예민한 소설을 쓰는데,
정작 작가의 감각은 둔해질 대로 둔해져 있었다.
커피를 사발로 들이부어도 소용없었다.
카페인은 내 심장만 뛰게 할 뿐, 뇌를 깨우지는 못했다.
나는 좀비처럼 앉아서 자판을 두드렸다.
타자를 치다가 졸고, 다시 깨서 지우고, 또다시 치고.
그건 창작이 아니라 막노동이었다. 가장 힘든 건, 이 피로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잠을 자도 풀리지 않고,
쉬어도 충전되지 않는 방전된 배터리.
그 상태로 나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았다.
영감이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그냥, 안 쓰면 이 무기력함에
영영 잠식될 것 같아서였다.
신기한 건,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쓴 글이 의외로 멀쩡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힘을 빼고 쓴 덕분일까.
문장 군더더기가 줄어들고,
감정 묘사가 더 건조하고 서늘해졌다.
피곤에 찌든 내 상태가 소설 속의 우울한 분위기와 기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작가가 예민하고 날 선 상태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작가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피로에 절어 있다. 그 몽롱한 상태를 뚫고, 정신줄을 부여잡고 써 내려가는 것이다.
졸려서 죽을 것 같은데,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쓴 문장들.
그 처절한 졸음과의 사투가 활자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지금도 나는 피곤하다. 아마 내일도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쓸 것이다. 피로는 내 친구이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이 한 문장을 완성했을 때의 그 안도감. 그게 내가 이 만성적인 늪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밧줄이다.
나는 오늘도 하품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문장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