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너무 많다.

12화 : 평범한 사람으로 산다는 건

by 현영강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남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표현력이 좋고, 세상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착각했다. 내 문장이 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칠 줄 알았다. "와, 이런 천재가 어디 숨어 있었어?" 이런 반응을 기대하며 소설을 투고하고 공모전에 글을 제출했다.



그런데 웬걸. 서점에 갔다가, 그리고,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나는 처참하게 깨졌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발에 채일 지경이었다.



대형 서점 평대에 깔린 책들을 펼쳐 보라. 첫 문장부터 기가 막혀서 숨이 턱 막히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웹소설은 또 어떠한가. 베스트 순위에 있는 작품들을 보라. 하루에 5천 자를 매일 써내면서도, 문장 하나 무너지지 않고 독자를 홀리는 괴물들이 우글거린다. 심지어 프로 작가도 아닌, 익명의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조차 명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절망. 내가 밤새워 고치고 다듬어서 겨우 만든 문장을, 저 사람들은 숨 쉬듯이 뱉어내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나의 재능이라는 게 기껏해야 '동네 글짓기 대회 장려상' 수준이었구나, 하는 자괴감. 그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 내 키보드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글을 써야 하나?"



"내 글이 이 거대한 도서관에

먼지 한 톨이라도 보태는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에 며칠을 앓던 적이 있다. 질투가 났고, 무기력해졌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열등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냉정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쓴다는 것. 그것은 이제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작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일 뿐이었다. 요리사가 칼질을 잘하는 게 자랑이 아니듯, 작가가 문장력이 좋은 건 당연한 거였다. 이 바닥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단순히 '문체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 괴물들과 필력으로 정면 승부를 해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나는 헤밍웨이도 아니고, 카뮈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가장 잘 쓰는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작가가 되기로.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이야기의 독창성으로 승부하기로.



내 글이 교과서에 실릴 명문은 아닐지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상하고 비틀린 이야기를 쓰기로.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교감신경 항진증과 싸우며,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도, 기어이 웃으면서 글을 쓰는 미친놈은 나밖에 없다.



나의 이 결핍, 나의 이 현실,

그리고 내 뒤틀린 시선. 이것이 나의 무기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간단하다. 더 거대하고 무서운 괴물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돌연변이가 되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잘 쓰는 건 그들에게 양보한다. 대신 나는 아무도 쓰지 않는 글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안하다.



열등감은 사라지고, 오기가 생긴다.



"그래, 너네 글 잘 쓴다. 인정."

"근데 나처럼 쓸 수는 없을걸?"





이 뻔뻔한 자신감 하나가,

수많은 천재들 틈바구니에서

범인(凡人)인 내가 펜을 놓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