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당신의 소설이 잡히지 않는다면
"내용이 깡패면 제목이 평범해도 뜬다."
이 말을 믿는다면 당신은 아직 아마추어다.
서점에 깔린 책이 수만 권이고, 웹소설 플랫폼에 하루에 올라오는 신작이 수천 개다. 독자는 내용을 보고 고르는 게 아니라, 제목을 보고 '간보기'를 한다.
제목에서 낚지 못하면, 당신의 그 훌륭한 첫 문장은 읽히지도 못한 채 데이터 쪼가리로 남는다. 제목은 소설의 이름표가 아니라, '광고 카피'다.
직관적으로 꽂히거나,
미친 듯이 궁금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시인 흉내 내지 마라
가장 안 팔리는 제목 유형이 있다.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제목은 일기장에나 써라.
독자는 제목을 보고 장르를 유추한다. 그런데 제목이 저렇게 모호하면, 이게 로맨스인지 스릴러인지 수필인지 알 수가 없다. 불친절한 가게에는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익숙한 단어 두 개를 붙였는데,
그 조합이 기괴할 때 독자는 클릭한다.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과 '복수극'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에게 기억법이라니?
나의 소설 [식물인간]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단어지만, 소설 제목으로 걸어두면 "식물인간이 주인공인가? 아니면 비유인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반반한 마을]도 '예쁘다'와 '반반(Half)'의 중의적 의미를 노렸다. 평범한 단어를 비틀어라. 그 틈새에서 호기심이 생긴다.
장르의 냄새를 풍겨라
스릴러라면 피 냄새가 나야 하고, 로맨스라면 설탕 냄새가 나야 한다. [조향사]라는 제목을 지을 때, 나는 독자가 즉각적으로 '냄새', '범인', '추적'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길 바랐다. 제목만 봐도 "아, 이건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이야기구나."라고 견적이 나와야 한다. 독자는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가 확실하다.
김치찌개 전문점에 '프랑스식 가정식'이라는 간판을 달지 마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당신의 장르를 간판에 박아 넣어라. 문장형 제목? 길다고 능사가 아니다 요즘 소설 트렌드는 문장형 제목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전지적 독자 시점]
이 제목들의 특징은 '로그라인'을 제목으로 썼다는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되었다", "독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본다". 제목만 읽어도 줄거리가 파악된다.
당신의 소설 설정이 복잡하다면, 차라리 제목에서 스포일러를 해라. "나는 오늘 아내를 죽였다." 이런 제목은 1초 만에 상황을 설명해 준다. 제목을 짓는 건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원고를 다 쓰고 나서 대충 짓지 마라. 나는 제목을 정하지 못하면 첫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다. 제목은 내가 가야 할 목적지이자, 독자를 유혹하는 미끼다.
당신의 소설 제목을 다시 봐라.
그게 당신의 글을 대변하는가?
간판이 구리면,
아무리 맛집이라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