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슬럼프는 게으름!
"작가님, 요즘 슬럼프인가 봐요.
글이 한 줄도 안 써져요."
이런 징징거림을 들으면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굶어 죽을 건가요?"
직장인이 "부장님, 저 오늘 슬럼프라서 보고서 못 쓰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책상이 빠지거나 시말서를 쓸 것이다. 의사가 "오늘 수술할 기분이 아니네요. 영감이 안 떠올라서요."라고 하면 환자는 죽는다. 그런데 유독 글 쓰는 인간들만 이 '슬럼프'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마치 자신이 고뇌하는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글쓰기는 예술이기 전에 노동이다. 벽돌공이 벽돌을 쌓듯, 목수가 못질을 하듯, 작가는 단어를 쌓고 문장에 못질을 하는 기술자다. 영감? 뮤즈? 그런 건 그리스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의 작가에게 영감은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의자를 짓이길 때 쥐어짜 지는 땀방울이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 게으르거나. 둘째, 잘 쓰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당신의 눈높이를 쓰레기통까지 낮춰라
대부분의 슬럼프는 '완벽주의'에서 온다. 첫 문장부터 도스토옙스키처럼 쓰고 싶고, 이번 챕터에서 독자를 기절시키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당신의 손가락을 마비시킨다. "이 문장은 너무 구려." "이 전개는 너무 뻔해."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모니터 속 커서는 거대한 벽으로 변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쓰레기를 쓸 것이다."라고 선언해라.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채우려고 해라. 망한 문장이라도 없는 문장보다는 낫다. 망한 문장은 고쳐 쓸 수 있지만, 백지는 고쳐 쓸 수도 없다. 기준을 바닥까지 낮춰라. 그래야 글이 흐른다.
루틴이 재능을 이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해진 분량을 쓰고 달린다. 스티븐 킹은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쓴다. 그들이 천재라서? 아니, 그들은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영감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당신은 칠순 잔치할 때 첫 책을 내게 될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앉아라. 그리고 써라. "아, 진짜 쓸 말 없네. 죽고 싶다. 배고프다. 뭐 쓰지." 이렇게 투덜거리는 문장이라도 10분 동안 타이핑해라.
신기하게도, 뇌는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 주인놈이 또 일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마지못해 시동을 건다. 작동 흥분 이론. 의욕이 있어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니까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다
정말로 쥐어짜도 안 나온다면, 그건 뇌의 우물이 말라버린 거다. 최근에 책을 몇 권이나 읽었나? 영화는? 다큐멘터리는? 작가는 끊임없이 남의 이야기를 훔쳐먹고 소화해서 배설하는 존재다.
먹은 게 없는데 나오길 바라는 건 변비 환자의 욕심이다. 글이 막히면 억지로 쓰지 말고, 서점으로 달려가라. 남이 쓴 기가 막힌 문장을 읽고 질투심을 느껴라. "와, 저 자식 글 잘 쓰네. 열받네."
그 열등감이 당신을 다시 키보드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슬럼프는 없다. 그저 쓰기 싫은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달콤한 핑계일 뿐이다. 프로는 기분으로 일하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우리는 쓴다. 그게 밥벌이의 지겨움이자 숭고함이다.
오늘 몫의 원고를 채우지 못했다면 잠들지 마라. 당신이 기다리는 영감님은 오지 않는다. 대신 마감이라는 저승사자가 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