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현실의 무한함
방구석에 처박혀서 머리만 쥐어뜯는 작가들이 있다.
"아, 소재 떨어졌다."
"새로운 이야기가 안 떠올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게으른 거다. 소재는 네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 네가 닫아버린 창문 밖에 널려 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관음증 환자여야 한다. (물론 범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세상을 훔쳐보고, 타인의 삶을 도청하고,
남의 비극을 주워 담는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소설은 허구(Fiction)지만, 그 재료는 철저히 사실(Fact)이어야 한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힘. 그건 책상 앞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거리 위에서 나온다.
카페는 무료 취재 현장이다
나는 글이 막히면 노트북을 덮고 카페에 간다.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 뒤 테이블에 앉은 아줌마 부대, 구석에 앉은 카공족.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라.
상상으로 쓴 이별 장면은 뻔하다. "우리 헤어져." "사랑했어." 눈물 뚝뚝. 하지만 현실의 이별은 훨씬 더 지질하고 웃기다. "야, 너 저번에 내가 사준 에어팟 내놔." "미친놈아, 그걸 지금 달라고 하냐?" 이런 대사는 머리에서 못 나온다. 오직 현장에서만 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단어, 억양, 말실수, 침묵의 순간. 그걸 주워 담아라. 그게 당신의 소설을 리얼하게 만든다.
구글링보다 강력한 건 '직접 경험'이다
"주인공이 총에 맞았다." 이걸 쓰기 위해 구글에 '총상 고통'을 검색하는 건 하수다. 직접 총을 맞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고통을 유추할 수는 있어야 한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을 때의 그 날카로운 통증,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의 묵직한 타격감. 그 감각을 확대 해석해라.
장소를 묘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로드뷰로 본 풍경과 직접 가서 맡은 냄새는 천지 차이다. 폐가 체험을 쓰는 작가라면, 적어도 밤에 불 꺼진 지하실에는 들어가 봐라. 그때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퀴퀴한 곰팡이 냄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 그 육체적 경험이 문장에 묻어날 때 독자는 소름이 돋는다.
메모광이 되어라
인간의 기억력은 금붕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따 적어야지" 하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휘발된다. 꿈에서 본 장면, 길가다 마주친 특이한 사람, 버스에서 들은 웃긴 라디오 사연. 그 즉시 적어라. 스마트폰 메모장이든, 꼬질꼬질한 수첩이든 상관없다. 나중에 글을 쓸 때 그 메모 한 줄이 막힌 혈을 뚫어주는 치트키가 된다.
디테일은 관찰에서 나온다
"그는 가난했다." 이 문장은 죽은 문장이다. 관찰해라. 가난이 사람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닳아 빠진 구두 뒤굽, 겨울에도 얇은 양말, 식당 메뉴판 가격부터 확인하는 눈동자. 상상은 추상적이지만, 관찰은 구체적이다. 독자는 '슬픔'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으며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상주의 떨리는 손에 반응한다.
작가의 눈은 CCTV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을 포착하고, 확대하고, 저장해라. 세상은 거대한 소재 창고다. 방 안에만 있지 마라.
나가서 훔쳐라.
세상 모든 비극과 희극을 당신의 문장으로 박제해라. 그게 작가가 가진 유일한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