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를 다시 다뤄 보죠.

27화 : 설명 OUT

by 현영강

소설을 읽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캐릭터들이 갑자기 '설명충(TMI)'으로 빙의할 때다.



"철수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에는 전설이 내려오잖아. 500년 전에 용이 승천하려다가..."



"그래, 영희야. 그 용은 마을 사람들의 배신으로 이무기가 되었지."



세상에 어떤 미친 인간들이 대화를 저따위로 하나?
"너도 알다시피"라는 말은 작가가 독자에게 정보를 주입하고 싶은데, 지문에 쓰기 귀찮으니까 캐릭터 입을 억지로 벌려서 쑤셔 넣는 거다. 이건 대사가 아니다.



정보 전달을 위한 셔틀일 뿐이다. 좋은 대사는 정보가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보여줘야 한다.



죽은 대사를 살려내는

심폐소생술 3가지를 알려주겠다.



"너도 알다시피" 금지
캐릭터 둘이 이미 아는 사실이라면 대화로 꺼낼 필요가 없다. 부부끼리 "여보, 당신은 3년 전에 나와 결혼했고, 우리에겐 아들이 하나 있지."라고 말하나?



절대 안 한다.
정보는 지문으로 처리해라.

대사는 현재 진행형인 갈등이나 감정을 다뤄야 한다.



"그 전설 때문에 또 사람이 죽었어."
이렇게 사건만 던져라.

전설의 내용은 나중에 풀면 된다.



말하지 말고 숨겨라.
초보 작가는 캐릭터가 속마음을 구구절절 말하게 한다.



"나 지금 너무 슬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이건, 가사지 소설 대사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감정을 숨긴다.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 밥상을 차려주거나,

신발을 정리하거나, 딴청을 피운다.



"갈 거야?"
"어."
"밥은 먹고 가."
"됐어."
"비 온대. 우산 가져가."



이 짧은 대화 속에 '가지 마', '붙잡아 줘', '이미 끝났어'라는 수만 가지 감정이 숨어 있다.



이게 '서브텍스트'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마라.



빙 돌려서 말할 때,

독자는 그 숨겨진 진심을 찾아내고 전율을 느낀다.



대사는 탁구다.

혼자 5줄 이상 길게 떠드는 대사는 웅변이다.



연극 독백이 아니라면,

대사는 짧게 치고받아야 한다.
상대가 공격하면 받아치고,

피하고,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한다.



대화는 협력이 아니라 '투쟁'이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른 두 사람이 부딪쳐야 재미있다.


A: "돈 갚아." (공격)
B: "다음에 줄게." (방어)
A: "다음이 언제인데?" (추격)
B: "너 나 못 믿냐?" (역공)



이렇게 긴장감이 팽팽해야 독자가 몰입한다.
"돈 갚아." "응, 알았어. 내일 줄게." "고마워."
이런 평화로운 대화는 재미없다. 갈등을 넣어라. 싸움을 붙여라.



사투리와 말버릇에 집착하지 마라.
캐릭터 개성을 살린답시고 과도한 사투리나 "~하오", "~하게" 같은 어미를 남발하지 마라.
읽기 힘들다. 가독성만 떨어뜨린다.



말투보다는 그 캐릭터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에 집중해라. 냉소적인 캐릭터라면 "사랑해" 대신 "나쁘지 않네"라고 할 것이고, 소심한 캐릭터라면 "싫어" 대신 "글쎄..."라고 말꼬리를 흐릴 것이다.



어미가 아니라 '어휘'가 성격이다.
대사는 작가가 쓰는 게 아니다. 캐릭터가 살아서 지들끼리 떠드는 걸 작가가 받아적는 것이다.



당신의 원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라.





만약 친구랑 대화할 때,

절대 안 쓸 것 같은 문장이 있다면, 당장 지워라.
리얼리티는 그 어색함을 없애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