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수면제다.

14화 : 잠이나 자고 싶은 계절

by 현영강

봄이 온 것 같아요!




잔인한 달이다. 특히나 대구에 사는 나에게는.



혹자는 라일락이 죽은 땅에서 자라나서 잔인하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잔인하다. 천지가 개벽하듯 꽃들이 터져 나오는데, 내 눈꺼풀은 천근만근 닫히기 때문이다.



춘곤증.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풀리면서 찾아오는 이 불청객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독이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12시.
창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진다.



남들은 "날씨 죽인다"며 탄성을 지르겠지만,

나는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다.



햇살은 자연산 수면제다. 그 따뜻한 기운이 내 정수리를 내리쬐면, 뇌세포들이 하나둘 파업을 선언한다.



"야, 날씨도 좋은데 일하지 말고 좀 자라."



​모니터 속의 커서는 여전히 깜빡거리며 나를 재촉한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는 자꾸만 떨어진다.
상모돌리기를 하듯 끄덕거리다 화들짝 놀라 깬다.
방금 내가 쓴 문장을 보니 가관이다.



"주인공은 범인을 잡으려다 말고... 쿨쿨..."



무의식이 키보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신다. 평소 같으면 각성 효과가 있었을 텐데, 봄의 나른함 앞에서는 카페인도 무용지물이다.



심장만 쿵쿵거리고 머리는 여전히 몽롱하다. 세수를 하고,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스트레칭을 해봐도 소용없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이다. 겨울잠에서 깬 곰도 비틀거린다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이 계절의 중력을 어떻게 거스르겠는가.



​창밖을 보면 사람들이 하늘 아래서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든다. 그 에너지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나는 이 타자기 앞에서 졸음과 레슬링을 하고 있는데...



글을 쓴다는 건 뇌를 풀가동시켜야 하는 고도의 노동이다. 그런데, 뇌가 봄바람에 녹아내려 버터처럼 흐물거리니, 문장에 힘이 실릴 리가 없다.



서스펜스를 써야 하는데 문체가 자꾸 나른해진다.
살인마가 쫓아오는 장면,

묘하게 평화롭다.
망했다.



​결국 나는 타협한다.



"딱 10분만 자자."



쪽잠을 청한다.
그 10분의 달콤함은 세상 어떤 것보다 강렬하다.
물론 눈을 뜨면 6시간이 지나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봄은 작가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세상은 깨어나는데, 나는 자꾸 잠들고 싶어지니까.
꽃은 피는데, 내 글은 시들어가니까.



춘곤증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그저 졸면서도 한 글자씩 더디게 나아가는 수밖에.




​봄이여, 제발 좀 적당히 따뜻해라.
내 문장이 다 녹아 없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