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좁아진 인간관계, 그 쾌적한 고립에 대하여
소설가로 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 한 번 스치듯 만난 동호회 사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빈말만 N년째 주고받는 동기가 있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인맥이 재산인 줄 알았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가 많을수록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부지런히 명함을 돌리고, 경조사를 챙기며, 내 귀한 저녁 시간을 남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데 썼다.
하지만,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그 수많은 인맥은 재산이 아니라 '부채'였다는 것을.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감정과 에너지를 쥐어짜서 모니터에 붓는 작업이다. 하루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오전에 소설 속 주인공과 치열하게 싸우고 나면, 오후에는 숟가락 들 힘조차 남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거나,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를 할 여력은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싸'가 되었다.
술자리는 거절하고, 단톡방은 조용히 나왔다.
"왜 이렇게 비싸게 구냐",
"글 쓴다고 유세 떠냐"는 비난도 들었다.
변명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주인공 챙기기도 바쁘니까.
현실의 인간관계가 넓어질수록, 내 소설 속 세계는 얕아진다. 이것은 작가의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결과적으로 내 인간관계는 극도로 협소해졌다.
연락하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다.
활동 반경도 내 방, 집 앞 카페가 전부다.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내 세계는 아주 좁은 골목길처럼 변해버렸다.
누군가는 묻는다.
"작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글감이 나오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얕고 넓은 만남 백 번보다, 깊은 고독 한 번이 더 훌륭한 글감이 된다. 술자리에서 떠드는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혼자 벽을 보고 앉아 내 내면의 바닥을 긁어낼 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을 덜 만나는 대신, 나는 나를 더 많이 만난다.
나는 이 협소함이 마음에 든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사라진 자리에는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휴대폰이 조용할수록 내 문장은 시끄러워진다.
인간관계의 군살을 쫙 뺀 다이어트.
그 가벼워진 몸으로 나는 더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나는 안다. 풍요로운 인간관계는 작가에게 사치라는 것을.
고독해야 쓴다.
좁아져야, 비로소 깊어진다.
내 세상은 좁아졌다.
그 덕분에 내 우주는 더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