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트라우마

16화 : 다시금 왔구나.

by 현영강

낭만? 개나 줘라.



사람들에게 기차 여행은 삶은 달걀과 사이다, 그리고 차창 밖의 풍경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기차는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밀폐된 관짝'일 뿐이다.



다시금 설날, 명절이 왔다.



명절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자,

내 교감신경은 벌써부터 비명을 질러댄다.
예매 전쟁? 그건 건강한 사람들의 유희다.



나에게는 예매가 문제가 아니라,

'명절' 자체가 목숨을 건 도박이다.



​역사(驛舍)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겠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사람들. 그들의 들뜬 표정, 시끄러운 통화 소리, 섞이고 섞인 체취들.


"도망쳐. 여긴 위험해."
뇌가 보내는 경고 신호.




​40분.
나는 내릴 수 없다. (상상 중입니다.)
이 절대적인 '통제 불가능성'이 나를 미치게 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뛰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엉덩이를 적셨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신발을 벗고 편하게 잠을 청하는 동안, 나는 가방 속을 뒤져 비상약(신경안정제)을 꺼냈다.



물이 없어서 침으로 억지로 알약을 삼켰다.
약효가 돌기까지 걸리는 15분.
그 시간이 15년처럼 느껴졌다.



​창밖의 풍경은 흉기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고막이 먹먹해지고, 어둠이 창문을 덮칠 때마다 나는 내가 묻혀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제발, 제발 멈춰."
속으로 수백 번 비명을 질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단위의 승객들이 귤을 까먹으며 웃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나 혼자만 재난 영화를 찍고 있었다. 세상과 나 사이의 유리벽이 너무나 두껍고 차갑게 느껴졌다.



어릴적 ​트라우마는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각인된다.
이번 설, 나는 고향에 간 게 아니라 전쟁터에 간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내 다리는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테고.


​다음 명절?
모르겠다.


일단은 됐다.

위에까진 상상도고, 나는 집에 있을 예정이다.




달리는 관짝에 타지 않는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내 방에 누워 이 글을 쓴다.
멈춰있는 방바닥이 이렇게 감사하다.





아버지, 제가 기차를 싫어하는 이유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