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을 지르는 점심

17화 : 기억은 여전히 제자리에

by 현영강

교감신경이 최고조로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매복해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 같다.



​항진(亢進)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소리가 고막까지 울린다.
약 기운은 이미 다 소진됐다. 나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귀를 막는다. 하지만 소용없다.



이 소리들은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녹음 테이프니까.



​큰소리가 들린다.
장창.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가 울부짖고, 욕설이 비수처럼 날아다니던 그 옛날의 풍경.



지금 거실은 조용한데, 내 귓가에는 그날의 싸움 소리가 환청처럼 쟁쟁하다. 그 끔찍했던 데시벨이 내 뇌를 갉아먹는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진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분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원망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눈빛.



산 사람의 목소리와 죽은 사람의 얼굴이 뒤섞여 나를 압박한다. 과거는 죽지 않았다.



​불안하다.
이 연휴가 며칠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나는 이 소란스러운 기억의 파티를 견딜 체력이 없다.



가슴이 조여오고, 호흡이 얕아진다.
과거가 현재의 내 멱살을 잡고 흔드는 이 기분.
식은땀이 흐른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유일한 탈출구는 의식의 스위치를 끄는 것뿐이다.



​약봉지를 뜯는다.






​나는 자야겠다.
눈을 떴을 땐,

이 지독한 환청과 환영들이 모두 사라져 있기를.



나는 가야겠다.
과거가 현재를 덮치지 못하는,

아주 깊고 검은 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