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증발론

4화 : 독자의 오감을 멱살 잡고 흔드는 '보여주기'의 기술

by 현영강

초보 작가의 원고를 열어보면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아주 정직하다. 주인공은 화가 나면 무척 분노했고, 슬프면 가슴이 찢어질 듯 슬펐으며, 무서우면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두려웠다고 적혀 있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의 감정을 독자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나머지, 감정에 이름표를 딱 붙여서 독자의 입에 억지로 떠먹여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을 직접적으로 명명하는 순간, 텍스트가 품고 있던 진짜 감정은 공기 중으로 허무하게 증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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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고 적혀 있으니 슬픈 줄은 알겠지만, 독자의 가슴은 전혀 슬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코미디언이 무대에 올라와서 자기가 방금 한 농담이 왜 웃긴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소설은 설명문이 아니라 체험판이어야 한다. 문학 교친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쇼 돈 텔(Show, Don't tell), 즉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신체적 반응에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머리로 인지되기 전에 반드시 몸으로 먼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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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감신경 항진증과 불안을 앓으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닥쳤을 때, 나는 결코 내가 지금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시야가 바늘구멍처럼 좁아지고,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날뛰며, 손끝이 차갑게 마비되어 갈 뿐이다. 작가는 바로 그 생리적인 감각을 집요하게 묘사해야 한다. 두렵다는 단어 한 번 쓰지 않고도 독자가 함께 숨을 헐떡이게 만들어야 진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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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반응을 넘어 감정을 주변의 사물과 환경에 투영하는 방법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지독한 상실감에 빠진 주인공이 있다고 치자. 그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엉엉 울었다고 쓰는 건 삼류다.



대신 그가 며칠째 치우지 않은 방안의 풍경을 비춰라.



탁자 위에서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린 배달 음식,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소주병, 그리고 창문 틈으로 무심하게 들이치는 눈부신 아침 햇살. 세상은 이렇게나 멀쩡하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만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잔인한 대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기를 머금고 눅눅해진 영수증 하나가, 때로는 백 마디의 통곡보다 훨씬 더 깊은 슬픔을 전달한다.




​행동과 대화의 이면을 활용하는 것도 매우 훌륭한 보여주기의 기술이다. 진짜 폭발할 것 같은 분노는 오히려 차갑고 고요하게 발현될 때가 많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대신, 설거지하면서 수세미로 접시를 미친 듯이 박박 문지르다가 결국 유리를 깨뜨려 손에서 피가 흐르게 놔두는 식이다. 상대방을 향해 욕을 퍼붓는 대신,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어 턱 근육이 툭 불거지게 만들어라.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작가가 굳이 떠먹여 주지 않아도, 캐릭터의 미세한 떨림과 신경질적인 행동 하나만으로도 그 이면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충분히 짐작하고 유추해 낸다.




​당신의 원고를 다시 한번 훑어보라.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 외롭다 같은 감정 형용사가 보인다면 그 단어들을 모조리 지워버려라. 그리고 빈자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캐릭터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관찰해서 적어라. 독자를 믿어라.




당신이 치밀하게 깔아놓은 오감의 단서들을 주워 담으며, 독자는 스스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소설가의 진짜 임무는 독자의 머릿속에 감정이라는 이름의 영화를 생생하게 상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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