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공포에 맞서기
초고를 완성하고 탈고의 끔찍한 고통을 넘어 마침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들은 거대한 착각의 늪에 빠진다. 자신이 뼈를 깎고 피를 토해 만든 문장들이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장 내일 아침이면 수많은 독자가 열광하고 언론이 주목하며 자신의 비루했던 인생이 단숨에 뒤바뀔 것이라는 환상이다.
하지만 출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작가를 맞이하는 것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잔인한 고요함이다. 세상은 당신이 책을 냈든 말든 단 1그램의 관심도 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팍팍한 생존을 버텨내느라 타인의 활자에 시선을 줄 여유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당신이 밤을 지새우며 깎아낸 서사는 서점의 수많은 매대 구석에서 소리 없이 먼지를 뒤집어쓸 뿐이다. 이 지독한 무관심의 거대한 벽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 작가의 알량한 자아는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린다.
나 역시 그 얄팍한 숫자의 마약에 취해 헛바람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내 소설이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주목할 신상품이라는 화려한 띠지를 달며 종합 순위 50위권까지 치고 올라갔을 때 나는 마침내 세상이 내 고통과 재능을 알아준다고 오만하게 착각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순위표는
불과 며칠 만에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판매 지수와 조회수에 목을 매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새로고침을 누르며 타인의 인정과 활자를 구걸하는 짓은 작가의 영혼을 가장 빠르고 비참하게 갉아먹는 독약이다. 독자의 반응이 없다는 공포는 내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부정당하는 것 같은 서늘하고 끔찍한 공허함을 몰고 온다.
하지만 작가라면 이 지점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잔혹한 진리가 하나 있다. 소설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에 작가 스스로를 구원하고 증명하기 위해 먼저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수갈채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원한다면 무대 위로 올라가 연기를 하거나 자극적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야지, 곰팡내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활자를 조립하는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상과의 지독한 단절과 고립을 자처하는 행위다. 아무도 내 글을 기다려주지 않고 아무도 내 불행과 가난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이 철저한 고독 속에서, 오직 나 자신만이 내 문장의 유일한 독자이자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환호성을 기대하며 펜을 드는 자는 단 한 번의 싸늘한 외면 앞에서도 쉽게 붓을 꺾어버리지만, 철저한 고립 속에서 자신의 끓어오르는 핏줄을 응시하며 쓰는 자는 세상의 무관심 따위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독자가 없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원고를 냉정하게 도마 위에 올려놓고 무자비하게 해부해 보라.
당신의 서사가 과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피 같은 시간과 돈을 기꺼이 빼앗을 만큼 압도적이고 치명적으로 매력적인가.
타인의 무관심은 당신을 향한 세상의 저주가 아니라, 당신의 문장이 아직 세상을 베어버릴 만큼 충분히 예리하게 벼려지지 않았다는 서늘하고도 정직한 증명서일 뿐이다. 세상이 내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고 방구석에서 억울해할 시간에,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멱살을 잡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질질 끌고 갈 수 있는 지독한 문장 하나를 더 깎아내야 한다.
그것이 이 차갑고 매정한 활자의 생태계에서 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그러니 모니터 앞에서 무의미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던 나약한 손가락을 거두어 다시 차가운 키보드 위로 올려놓아라.
아무도 당신의 글을 읽어주지 않는 지금 이 적막하고 처절한 고립의 시간이,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독창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짐승 같은 서사를 토해낼 수 있는 완벽한 기회다. 세상의 완벽한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잉태된 날카로운 문장만이, 언젠가 세상의 그 견고한 무관심의 벽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법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라.
그리고 그 텅 빈 침묵을,
당신의 활자로 잔인하게 찢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