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값싼 진통제를 맹신하지 마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간신히 읽어내고 나면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내내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지독한 갈등을 그려놓고서는, 결말에 이르러 갑자기 맑게 갠 하늘과 지저귀는 새소리를 묘사하며 주인공의 입가에 억지스러운 미소를 띠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도 그동안 주인공을 너무 가혹하게 굴렸다는 알량한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극의 마지막 순간에 독자와 캐릭터 모두에게 값싼 진통제를 처방해 버리는 것이다. 악당은 경찰에 순순히 체포되고 흩어졌던 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재회하는 식의 동화 같은 마무리는 서사가 쌓아 올린 묵직한 긴장감을 일순간에 시시한 농담으로 전락시킨다.
소설의 결말은 고생한 주인공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독자의 등을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힐링 캠프가 아니다.
진짜 압도적이고 훌륭한 결말은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이라는 얄팍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문학의 세계에는 오직 필연적인 엔딩만이 존재할 뿐이다. 주인공이 서사의 시작점에서 안고 출발했던 치명적인 결핍과, 생존을 위해 그가 내렸던 수많은 이기적이고 잔혹한 선택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기어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종착지가 바로 결말이다.
만약 주인공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도덕적인 선을 넘었다면,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그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작가가 주인공을 불쌍하게 여겨 그 끔찍한 인과율의 고리를 강제로 끊어내고 억지스러운 구원을 하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숨죽여 페이지를 넘겨온 독자에 대한 가장 비겁하고 악질적인 기만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서사는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해소된 무균실 같은 평화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의 가슴 한구석에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찝찝하고 서늘한 흉터를 남겨두는 쪽에 가깝다.
주인공이 괴물과 싸워 이겼다 하더라도 그의 한쪽 팔은 영원히 잘려나간 상태여야 하고, 세상을 구원했다 하더라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은 잿더미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어야 한다. 쟁취한 승리보다 잃어버린 상실의 크기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상처뿐인 영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진실한 얼굴이다.
모든 오해를 풀고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웃음 짓는 결말은 텔레비전 주말 연속극에나 어울리는 낡은 문법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된 닫힌 결말은 책을 덮는 순간 독자의 머릿속에서도 영원히 닫혀버리고 만다.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했던 감정의 파편들을 에필로그라는 이름의 쓰레받기로 너무 깨끗하게 쓸어 담으려 하지 마라.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굳이 표백제로 닦아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독자가 그 핏자국을 빤히 응시하며, 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덩그러니 남겨진 인물들이 어떻게 그 지독한 상실감을 안고 남은 생을 버텨낼지 스스로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작가는 해답을 쥐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먹먹한 질문을 독자의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매정한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원고 마지막 챕터를 펼쳐보라. 만약 그곳에 지나치게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거나 캐릭터들이 겪었던 고통의 흔적이 너무 쉽게 씻겨 내려간 것 같다면, 당장 그 평화로운 환상을 무참하게 박살 내버려라. 독자에게 값싼 위로를 팔지 마라.
당신이 창조한 세계의 냉혹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주인공을 기어이 처절한 잿더미 위에 홀로 세워두어라.
그매서운 여운만이 독자의 밤을 훔치고,
당신의 소설을 불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