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대신 절벽을 만들어라.

15화 : 독자의 수면권을 유린하는 챕터 엔딩의 기술

by 현영강

초보 작가들의 원고를 읽다 보면 챕터의 끝자락마다 아주 훌륭한 자장가가 흘러나온다. 오늘 하루 치열하게 싸운 주인공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작가는 친절하게도 창밖으로 지는 석양이나 고요해진 밤거리의 풍경을 묘사하며 하나의 장을 아주 평화롭고 깔끔하게 닫아버린다.



작가 본인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는 성취감에 취해 모니터 앞에서 기지개를 켜겠지만, 그 안일한 마침표를 마주한 독자 역시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덮고 조명을 끈 뒤 숙면에 빠져든다. 당신이 쓴 소설이 독자의 건강한 수면 습관을 돕는 수면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독자가 다음 날 출근을 망치면서까지 밤을 새워 당신의 활자를 집어삼키게 만들고 싶다면, 챕터의 마지막 줄에 결코 주인공을 재워서는 안 된다.



​챕터의 구분은 서사의 휴게소가 아니라 독자의 멱살을 잡고 다음 장으로 강제로 끌고 가기 위한 가장 폭력적이고 계산적인 절벽이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종결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지독한 강박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갈등이 절정에 달하고 숨통이 조여오는 바로 그 턱밑에서 작가가 뻔뻔하게 화면을 암전시켜버릴 때, 독자는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피가 마르는 손가락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잘 쓰인 스릴러나 웹소설의 챕터 엔딩은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매정하다.



모든 상황이 안전하게 정리되었다고 안도하는 순간, 굳게 닫힌 현관문 밖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려오거나 주인공의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기괴한 진동을 시작하는 바로 그 찰나에 서사를 냉혹하게 토막 내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매 챕터마다 억지스러운 살인마를 등장시키거나 폭탄을 터뜨리라는 삼류 드라마 같은 조언이 아니다.



물리적인 위협이 아니더라도 심리적인 절벽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믿었던 조력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단어 하나, 혹은 평범한 서랍장 구석에서 발견된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의 기괴한 위화감만으로도 독자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뇌리에 거대한 물음표를 때려 박기에는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밝혀지기 직전, 혹은 주인공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작가는 카메라의 전원을 무자비하게 뽑아버려야 한다. 이 끊어짐의 타이밍이 기가 막힐수록 독자는 작가가 쳐놓은 덫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게 된다.



​당신의 원고를 열어 모든 챕터의 마지막 문장들만 따로 떼어내어 나열해 보라. 만약 그 문장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감정을 갈무리하는 차분한 마무리에 머물러 있다면, 당장 그 꼬리를 잔인하게 잘라내고 갈등의 한복판으로 서사를 되돌려라.



독자에게 휴식 시간을 허락하는 작가는 이 매정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활자를 매개로 독자의 시간을 약탈하고 수면권을 유린하는 지독한 사기꾼이자 최면술사가 되어야 한다.



책을 덮고 싶어도 도저히 덮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악랄한 끊기의 예술이야말로, 평범한 글쟁이와 프로 소설가를 가르는 가장 서늘하고도 명확한 경계선이다.






주인공을 편안히 눕혀두지 마라. 그를 시커먼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세우고 등 뒤에서 거침없이 밀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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