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서늘하고 이기적인 진리
주인공의 주변을 맴도는 조연들이 마치 게임 속의 조작되지 않는 배경 캐릭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은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나타나 대신 칼을 맞아주고, 주인공이 추리에 막혀 좌절할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결정적인 힌트를 던져주며, 주인공이 멋진 대사를 내뱉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맹목적인 박수를 친다.
작가는 주인공의 서사를 원활하게 굴리기 위해 아주 편리하고 헌신적인 심부름꾼들을 창조해 낸 것이겠지만, 이런 얄팍한 들러리들이 등장하는 순간 소설의 리얼리티는 삼류 판타지 만화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세상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의 인생을 빛내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시간을 기꺼이 바치는 헌신적인 부속품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진짜 살아 숨 쉬는 압도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면 작가는 가장 먼저 이 기만적인 이타심부터 산산조각 내야 한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엑스트라부터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움직여야만 한다. 조연은 아침에 눈을 뜰 때 오늘 하루 주인공을 어떻게 도울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밀린 월세를 걱정하고,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속을 끓이며, 짝사랑하는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휴대폰만 쳐다보는 각자의 치열한 지옥을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이 서늘하고 당연한 진리를 망각하고 조연에게서 독립적인 자아와 일상적인 욕망을 거세해 버리는 순간, 그들이 뱉어내는 모든 텍스트는 영혼 없는 기계음에 불과해진다.
매력적인 조연은 주인공의 목적에 순순히 복종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주인공의 발목을 잡고 엇박자를 내는 자다. 주인공이 악당을 쫓기 위해 급하게 차를 빌려달라고 할 때, 평면적인 조연은 군말 없이 차 키를 던져주며 행운을 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조연은 오늘 저녁에 연인과 중요한 데이트가 있어서 절대 안 된다며 차 키를 품에 안고 찌질하게 버텨야 한다.
주인공의 거대한 대의명분과 조연의 지극히 사소하고 옹졸한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서사에는 작가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숨 막히는 마찰열과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조연은 주인공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결코 주인공의 뜻대로만 순순히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가장 현실적인 장애물이 되어야 한다.
또한 조연에게도 반드시 그들만의 서늘한 비밀과 결핍을 쥐여주어야 한다. 주인공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조력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배신을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그가 갑자기 악당에게 뇌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저 빚더미에 앉은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처절한 나약함 때문이어야 한다.
선과 악이라는 납작한 이분법으로 조연의 입체성을 짓누르지 마라. 모든 인물은 상황에 따라 가장 숭고한 성자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비열한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복잡한 모순덩어리다. 작가는 그들의 내면에 도사린 그 축축하고 이기적인 밑바닥을 집요하게 파헤쳐 서사의 무대 위로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야 한다.
당신의 원고를 펼쳐 주인공의 주변에 머무는 인물들의 이름표를 하나씩 떼어보라. 만약 그들이 하는 역할이 단순한 구글 검색이나 자판기, 혹은 무기 창고 따위로 완벽하게 대체될 수 있다면 당장 그 영혼 없는 인형들을 원고에서 모조리 지워 버려라.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스스로를 땔감으로 던지는 멍청한 불나방은 현실 세계에 없다. 오직 자신의 생존과 맹목적인 욕망을 위해 주인공과 기꺼이 진흙탕에서 뒹구는, 피가 흐르고 이기심으로 번들거리는 진짜 인간들로 당신의 세계를 빈틈없이 채워 넣어라.
조연이 각자의 생명력을 가지고 펄떡이며 폭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당신의 소설은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무서운 속도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