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서사의 제단
편리한 장례식이 치러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전개가 지루해지거나 주인공에게 어떤 극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해질 때, 작가들은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주변 인물 중 만만한 조연 하나를 골라 무참하게 죽여버린다. 주인공의 다정한 멘토나 헌신적인 연인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악당의 칼에 찔려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둔다.
작가는 독자가 이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주인공의 분노에 깊이 공감해 주기를 바라겠지만, 이런 값싼 죽음은 서사에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하는 삼류 신파극에 불과하다. 캐릭터의 죽음을 단지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나 독자의 감정을 쥐어짜기 위한 자극적인 소품으로 소비하는 것은 작가의 지독한 게으름이자 오만이다.
소설 속에서 누군가의 심장 박동이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등장인물 명단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사를 지탱하던 거대한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리며 세계의 축이 완전히 뒤틀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어야 한다. 만약 어떤 캐릭터가 죽었는데도 주인공의 최종 목표나 소설의 전체적인 플롯 방향이 이전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그 죽음은 완벽하게 낭비된 개죽음이다.
죽음은 주인공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신념을 산산조각 내고, 그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도덕적 딜레마의 늪으로 강제로 처박아야 한다. 캐릭터를 죽음의 제단에 바치려거든, 그 피의 대가로 서사의 방향키를 완전히 비틀어버릴 만큼 압도적인 인과율의 폭발을 준비해 두어야만 한다.
또한,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작가의 안일함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 따위의 우아한 죽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과정은 지독하게 끔찍하고 구질구질하며 고통스러운 육체적 붕괴의 연속이다.
끊어질 듯 헐떡이는 가래 끓는 숨소리, 통제력을 잃고 쏟아져 내리는 오물, 그리고 초점이 풀려버린 동공의 서늘한 탁함. 작가는 이 잔인하고 비참한 생리적 단절을 렌즈에 피가 튈 정도로 집요하게 담아내야 한다.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끈적한 핏물에서 피어오르는 비릿한 철분 냄새로 독자의 코끝을 마비시켜라. 진짜 훌륭한 죽음의 묘사는 독자를 울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공포와 충격에 질려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가 죽고 난 뒤에 남겨진 공백 역시 한두 번의 오열로 대충 갈무리해서는 안 된다. 진짜 잔인한 고통은 장례식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일상성에 있다. 늘 두 개의 머그잔에 커피를 타던 주인공이 무의식적으로 빈 잔 하나를 더 꺼냈다가 미친 듯이 손을 떠는 순간, 혹은 죽은 자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 끝없는 신호음만 듣고 있는 그 처절한 미련의 시간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라.
절단된 팔다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환상통을 느끼듯, 죽은 캐릭터의 부재는 남은 서사 내내 주인공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시커먼 유령이 되어야 한다. 죽음으로 빚어낸 감정의 부채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결코 청산되지 않는다.
당신의 원고를 펼쳐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챕터를 서늘한 눈으로 해부해 보라. 만약 그 죽음이 단지 극적인 전개를 위한 작가의 얄팍한 변덕이거나 값싼 눈물을 구걸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면, 당장 그 캐릭터를 무덤에서 꺼내어 살려내라. 목숨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살생부를 쓰지 마라.
소설가가 휘두르는 펜 끝은 진짜 칼보다 잔인하고 무거워야 한다. 당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누군가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면, 작가 본인조차 그 끔찍한 상실감에 며칠 밤을 악몽에 시달릴 각오로 그 목숨을 가장 비싸고 잔인하게 팔아넘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