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문장이 거세해버린 인간의 비린내

23화 : 기계의 완벽함에 맞서는 가장 미련하고 고통스러운 저항

by 현영강

나를 인공지능으로 의심했던 그 오만한 의뢰인과의 껄끄러운 대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억울함과 모멸감으로 뒤범벅된 채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아 내가 쓴 문장들을 병적으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 글의 어느 구석이 그토록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의 배설물처럼 보였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심의 근원은 내가 며칠 밤을 새우며 강박적으로 깎아내고 다듬었던 문장의 매끄러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문 하나, 오타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결벽증에 가까운 퇴고가 오히려 글에서 인간 특유의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을 지워버린 셈이다. 알고리즘은 교감신경의 폭주나 지독한 위장장애 따위는 겪지 않는다. 기계는 결코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하지 않고, 그저 입력된 값에 따라 가장 확률이 높은 단어들을 영혼 없이 조립해 낼 뿐이다.


​세상은 이제 빠르고 결점 없는 완벽한 텍스트를 원한다. 사람들은 활자를 음미하는 대신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하며 정보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기를 바라고, 그 얄팍한 소비의 속도에 발맞추기 위해 글은 갈수록 마찰력 없이 미끄러지는 매끈한 플라스틱처럼 변해 간다.


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문학은 결코 독자를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훌륭한 문장은 때때로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컥컥대게 만들고, 읽는 이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며, 도저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게 발목을 붙잡는 불편한 마찰열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꼬인 척추와 망가진 내장을 갈아 넣어 활자에 억지로 새겨 넣은, 결코 기계의 연산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지독한 비린내이자 핏자국이다.


​나는 의뢰인에게 내 결백을 구구절절 증명하는 짓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작업 과정을 설명하거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전업 작가로서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가장 비참한 항복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의 피땀 어린 이틀 밤을 기계의 짓으로 매도한다면, 나는 그 서늘한 오해조차 내 문장이 그만큼 치밀하게 조립되었다는 비틀린 훈장으로 삼아 꾸역꾸역 삼켜버릴 작정이다.


기계가 1초 만에 써 내려가는 분량을 위해 나는 또다시 며칠을 굶주리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미련하게 육체를 혹사하겠지만, 이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고통의 과정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작가로서 존재하는 유일하고도 명확한 방식이다.


​오늘도 나는 텅 빈 화면을 노려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얕은 숨을 헐떡인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글을 쓰겠다는 얄팍한 강박을 버리고, 내 불안과 결핍이 텍스트 사이사이에 기괴한 흉터처럼 남도록 기꺼이 방치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 텍스트의 세계를 잠식한다 한들, 살을 에는 가난의 공포와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처절한 발버둥은 오직 진흙탕을 뒹구는 상처 입은 인간의 손끝에서만 활자화될 수 있다.


나는 결코 기계처럼 매끄럽게 쓰지 않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짐승처럼 헐떡이며, 가장 불편하고 날것 그대로인 나만의 징그러운 세계를 계속해서 토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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