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로 축조된 가짜 유토피아

24화 : 디스토피아

by 현영강

새벽 2시. 이 낯선 도시의 밤공기는 무겁고, 모니터 화면 속에서 깜빡이는 커서는 일정한 박자로 내 시신경을 찌른다. 타인의 삶을 활자로 해체하다 문득 멈춰 섰다.



​왜 우리는 이토록 지쳐 있는가.



​거리에 나앉아 굶주리는 시대도 아니고, 손가락 터치 한 번에 전 세계의 정보와 재화가 쏟아지는 풍요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왜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무기력과 우울을 영혼의 기본값처럼 달고 사는 걸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토피아의 환상을 주입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빨리 도달하면 안식이 주어질 것이라는 달콤한 기만.



하지만, 그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땔감으로 던져 넣으며 불타오르는 법만 배웠을 뿐, 멈춰 서서 호흡하는 법을 거세당했다. 유토피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였고,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을 향해 영원히 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들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매대를 점령한 이른바, '힐링 소설'들을 떠올려 본다. 구석진 골목에 나타난 따뜻한 서점, 고양이가 운영하는 심야의 식당, 고민을 세탁해 주는 마법의 세탁소. 그 세계에서는 어떤 깊은 절망도 향긋한 차 한 잔과 다정한 위로 몇 마디면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린다.



갈등은 무해하고, 악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말은 언제나 폭신한 이불처럼 안전하다. ​하지만 나는 그 매끈하고 따뜻한 활자들 앞에서 묘한 불쾌감과 서늘함을 느낀다.



​그것은 문학을 가장한 마취제다. 곪아 터진 상처를 도려내고 피를 흘리며 진실을 대면하게 만드는 대신, 썩어가는 환부 위에 예쁜 밴드를 붙이고 '다 괜찮아질 거다'라고 속삭이는 지독한 위선.



지친 현대인들은 현실을 전복시킬 힘을 잃었기에, 그저 잠시 고통을 잊게 해 줄 값싼 진통제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가짜 유토피아를 짓고 싶지 않다. 소설은 솜사탕이 아니라 날 선 메스여야 한다.



자본주의가 빚어낸 이 기형적인 피로와 붕괴하는 인간성을 똑바로 직시하고, 혀가 마비될 만큼 지독한 쓴맛을 활자로 끓여내는 것.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해진 세상의 거짓된 온기를 벗겨내고, 가장 차갑고 잔인한 진실 앞에 독자를 발가벗겨 세우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지독한 새벽의 두근거림을 견디며 기어이 펜을 쥐는 이유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기만하지 않기 위해.



진통제에 취해 잠드는 대신,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서늘한 비극을 직시하기 위해. ​나는 방전된 껍데기만 남은 현대인들의 초상을 향해, 가장 날카롭고 건조한 문장의 영점을 다시 맞추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최근에 힐링 소설 하나를 읽었다.

그를 폄하하는 글이 아니다.

현대사회가 아파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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