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이틀 밤의 핏값을 알고리즘으로 매도당한 소설가의 통탄
최근 한국 소설 각색 작업을 하나 의뢰받았다. 작업에 착수하기도 전에 선입금을 꽂아주겠다는, 이 바닥에서는 꽤나 달콤하고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통장 잔고의 압박 속에서 활자를 파는 노동자에게 선입금이라는 단어는 망설일 이유나 수면욕마저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강력한 각성제였다. 나는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카페인으로 억지로 뇌를 깨우고, 뻑뻑해진 안구에 인공눈물을 쏟아부으며, 엉성하게 흩어진 타인의 세계를 허물고 내 문체의 뼈대와 살점을 억지로 이어 붙였다.
뒤틀리는 교감신경을 짓누르며 완성한 원고를 전송하고 났을 때, 내 몸은 이미 너덜너덜한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지독한 노동의 대가로 며칠은 숨을 쉴 수 있겠다는 알량한 안도감이 밀려오던 찰나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수고했다는 인사도, 원고에 대한 날 선 피드백도 아니었다. 모니터 위로 툭 떨어진 메시지 한 줄은 내 심장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작가님, 혹시 AI 쓰셨나요. 그 짧고 무심한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는 분노보다 먼저 바닥을 알 수 없는 지독한 슬픔과 참담함을 느꼈다.
이틀 밤의 수면을 반납하고, 피가 튀는 듯한 두통을 견뎌가며 한 글자 한 글자 내장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린 핏값이었다.
그 처절한 인간의 육체노동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텍스트를 배설해 내는 기계의 알고리즘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전업 작가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서늘하고 잔혹한 모멸감이었다.
물론 나도 인공지능을 쓴다. 밤새워 쏟아낸 초고의 널뛰는 호흡을 가라앉히고, 혀가 꼬이는 비문과 오타를 기계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제미나이의 차가운 눈을 빌릴 뿐이다.
서사의 뼈대를 세우고 인물들의 핏줄에 감정을 수혈하는 것은 오직 작가 본인의 살을 깎아내고 미쳐버릴 듯한 불안을 견뎌내야만 가능한 영역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명색이 한국소설가협회에 이름을 올린 소설가로서, 기계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징그러운 진창을 글로 쓰고 있다고 자부해 온 나였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단 한 줄의 가벼운 의심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시대가 변해 활자의 출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창작자의 피와 땀이 서린 문장이 이토록 쉽게 기계의 산물로 매도당하는 현실은 협회의 일원으로서 그저 통탄할 노릇이다.
아직 의뢰인과의 컨택은 끝나지 않았다. 이 불쾌하고 모욕적인 오해를 풀기 위해 내 문장의 증명서를 어떻게 들이밀어야 할지, 아니면 이 알량한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선입금이라는 인질 앞에서 비참하게 고개를 숙여야 할지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텅 빈 모니터를 노려보며 나는 다시 한번 씁쓸한 자괴감을 삼킨다. 활자의 무게는 갈수록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작가가 흘린 땀의 농도는 알고리즘의 확률 게임 앞에서 한없이 의심받는 시대다.
나는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고립된 방구석에서, 내가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미련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판을 두드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