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는 문장의 숨통을 조인다.

23화 : 동사의 뼈대만 남기는 법

by 현영강

나를 포함한 초보 작가들의 원고를 읽다 보면 문장들이 하나같이 잔뜩 살이 쪄서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묘사하려는 상황이나 감정에 확신이 없는 작가일수록 문장 앞뒤로 화려한 형용사와 부사를 덕지덕지 발라대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도 극심한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빠르게 도망쳤다’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텍스트에 감정을 욱여넣으려 애썼겠지만, 정작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의미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값싼 수식어들의 지루한 나열뿐이다.



형용사와 부사는 문장을 풍성하게 만드는 마법의 가루가 아니라, 서사의 속도감을 갉아먹고 문장의 근육을 마비시키는 시커먼 비계 덩어리에 불과하다.



​부사와 형용사의 남용은 작가의 지독한 게으름을 증명하는 자백이다. 슬프다, 무섭다, 아름답다, 끔찍하다, 같은 단어들은 작가가 독자에게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라고 강제로 지시하는 압력이다.



진짜 소름 끼치고 압도적인 문장에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단어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인물이 얼마나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설명하고 싶다면 당장 원고에서 '무섭다'라는 단어부터 지워버려라.



대신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엎어진 무릎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것, 턱관절이 통제력을 잃고 달그락거리는 소리, 시야가 좁아져 다가오는 살인마의 구두 코밖에 보이지 않는 생리적인 붕괴를 건조한 명사와 동사로만 타격감 있게 꽂아 넣어라.



상황 자체가 충분히 끔찍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알량한 수식어 따위는 없어도 독자는 알아서 호흡을 멈추고 책장을 넘기는 손을 떤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화려하게 덧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깎아내는 뺄셈의 예술이다. 피를 토하며 초고를 완성했다면, 퇴고의 단계에서 당신은 작가의 모자를 벗고 차가운 메스를 든 냉혹한 백정이 되어야 한다. 원고에 쓰인 '갑자기', '매우', '정말', '아름다운', '눈물겨운' 따위의 단어들을 모조리 수색하여 자비 없이 도려 내라.



그 비계 덩어리들을 남김없이 잘라내고 앙상한 명사와 동사만 남았을 때, 비로소 당신 문장의 진짜 뼈대와 마주하게 된다. 만약 수식어를 모두 지워냈더니 문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거나 유치해진다면, 그것은 애초에 서사의 밀도와 동사의 힘이 형편없이 약했다는 뜻이다.



그럴 땐 문장을 고치는 게 아니라 상황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당신의 원고를 열어 가장 감정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씬을 냉정하게 점검해 보라. 문장들이 형용사와 부사라는 값싼 화장품으로 구질구질하게 떡칠되어 있다면, 당장 사정없이 세수를 시키고 서늘한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어라. 독자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가장 강력하고 날카로운 텍스트는 화려하게 치장된 뚱뚱한 문장이 아니라, 뼈와 가죽만 남아 짐승처럼 번뜩이는 맹렬한 동사들의 앙상한 직진이다.




문장을 예쁘게 꾸미려 들지 마라.

잔인하게 깎아내어 칼날을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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