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아들 같다고 했었다.
어쩜 딸이 저렇게 무뚝뚝하니.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운 느낌의 레이스를 별로 안 좋아하고, 유치원에 갈 때 양갈래로 머리 묶는걸 엄청 싫어했었다고 한다. 어렴풋이 양갈래 머리를 하면 너무 예쁜 척을 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딸을 가진 엄마들이 가진 환상을 실현하기에 장녀는 커가면서 점점 더 뻣뻣한 자식이 되었다. 도통 말을 듣질 않았고 무언가 곱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왜? 뭐 때문에? 꼭 해야 해? 하며 말끝마다 지지부진하게 물고 늘어졌고 아주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뽀뽀도 거부했다. 딸들이 사랑스럽게 엄마 옆에 매달려 애정의 뽀뽀를 할 만도 한데 그런 법이라곤 없었고 오히려 막내딸이랑 서로 안아주고 있는 걸 보면 닭살이 돋는다고 방으로 냉큼 도망치기까지 했다. 뭔가 힘든 것 같아 보여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슬그머니 딸 방이라도 들어가면 자기 하던 일 한다고- 바쁘다고- 나가라고 훠이훠이 손짓하여 울컥 서럽기도 했는지 하루는 발끈해서 "넌 엄마가 싫니!" 했었던 적도 있었다.
다소 감정적이고 좋으면 너무 좋다, 싫으면 그건 싫다 풍부하게 표현하는 엄마에게 첫째 딸은 자기 배로 낳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성격이었다. 집안일에는 관심도 없고, 좋으면 좋다고 말도 안 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집에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 보였다. 큰 사고를 치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뭘 하라고 해도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죽어라고 안 해서 어릴 때부터 너 하나 키우는 게 다른 애들 열 키우는 것보다 힘들었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거기다 대고 딸이 열을 키워나 봤나... 하고 중얼거리면 콱 쥐어박고 싶었을 게다.
그래도
시장에 갈라치면 큰 딸을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편했던 것 같다. 남편은 어서 집에 가자 닦달하고 막내는 금방 다리가 아프다고 지쳐 앉아 버리는데 무뚝뚝한 딸은 엄마가 한참을 빙빙 돌아다녀도 군말 없이 같이 다니며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들었다. 물건을 깎는 에누리에 가끔 창피하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서 둘은 의외로 함께 잘 돌아다니는 쇼핑메이트였다.
엄마는 특별히 친구가 없었다. 결혼하면서 갑자기 남편을 따라 깡시골로 가게 되는 바람에 당시 알던 지인이나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연이 끊어졌다고 했다. 작게나마 사업을 하며 알게 된 인연들은 있었으나 친구는 아니었고 일로 엮인 사이들이었다. 이후에도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 때문에 사적으로 알고 지낼만한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맏딸이 유일한 친구였다. 친구처럼 투닥대고 싸우다가도 금방 풀어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끔은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던 사이. 엄마는 하던 일에 관해서 고민이 있을 때나, 부부간의 불만들도 내게 털어놓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곤 했다. 아들 같은 딸은 무뚝뚝했고 가끔은 엄마와 소리 높여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렇게 건방진 딸이 좋았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로서의 권위를 많이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딸을 대해줬다. 그걸 미처 몰랐던 딸은 자기가 잘나서 대접받는 줄 알았다. 엄마는 그런 딸을 묵묵히 기다려줬다.
가끔씩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부쩍 커버린 딸의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는지 언젠가부터 종종
엄마는 네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 키울 땐 많이 고생했지만 다 키우고 나니까 엄마가 살면서 제일 잘한 게 너희들을 낳은 것 같아 라고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글거린다며 흘려들었다. 남김없이 주워들을걸.